뱀파이어는 '포르피린증(症)'

입력 2009.06.02 23:42 | 수정 2010.04.29 11:33

햇빛 쬐면 피부에 물집 빈혈로 창백…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뱀파이어가 된 신부를 소재로 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뱀파이어나 흡혈귀는 소설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전설이나 상상 속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흡혈귀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질병이 있다. 희귀 질환의 하나인 '포르피린증'이란 병이다.

이 병은 적혈구 속의 붉은 색소인 헤모글로빈이 제대로 합성되지 않아 생기는 유전병의 하나. 헤모글로빈은 전구물질인 포르피린으로부터 8개 단계를 거쳐 생성되는데, 이 중 어떤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포르피린이 헤모글로빈으로 바뀌지 않고 신경 계통이나 간·피부 등에 과도하게 축적된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뱀파이어처럼 햇빛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 피부에 쌓인 포르피린이 자외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포르피린증 환자들이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에 물집이 생기거나 눈이 따갑고, 색소 침착이 되는 등 매우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포르피린증이 있으면 자외선을 쬐지 못하는 데다 빈혈까지 겹쳐 얼굴이 '드라큘라'처럼 창백해지기 쉽다. 유난히 드러난 송곳니도 특징이다. 포르피린증 치료의 권위자인 돌핀 박사에 따르면 이 병이 있다고 해서 치아가 특별히 더 자라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입술과 잇몸이 눈에 띄게 우묵하게 들어가 송곳니가 튀어나온 듯한 외모로 바뀐다.

현실에 흡혈귀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아마도 포르피린증을 앓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외모상의 공통점 외에도 한 가지 이유를 더 든다. 부족한 헤모글로빈을 보충하려고 남의 혈액을 마시려 했을 것이란 점이다. 물론 의학적 근거는 없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포르피린증 환자의 40%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요즘도 근본 치료는 어렵지만 조기 진단하면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이종화 교수는 "혈색소 구조 검사 등의 방법으로 조기 진단이 가능하며 포르피린을 만드는 성분을 3~4일간 투여하면 증상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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