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를 시청하다가 개그맨 이윤석씨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 때 문득 20년 전쯤 진료했던 우체국 공무원 L씨가 생각났다. 그는 걷는 것조차 힘겹게 보일 만큼 마른 체형으로 ‘국민약골’ 이윤석씨와 비슷한 이미지의 40대 초반 남자였다. 처음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L씨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을 만나면 뭔가 희망이 있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10년 전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가늘고 피가 섞인 변이 나오는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3년 전부터 심한 복통과 설사로 하루 열 번 이상 화장실에 갈 정도가 됐고 65kg이었던 체중도 50kg까지 줄었다고 했다.
“몇 년을 참다가 항문도 헐고 일상생활도 힘들어서 결국 병원에 갔습니다. 장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약도 먹고 1년이나 치료를 받아도 낫질 않는 겁니다. 혹시나 해서 종합병원에 갔더니 대장암이 의심스럽다고 하더군요. 장 투시 검사를 해보니 암도 아니었고, 눈치를 보니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최근의 변 상태를 물으니 거품이 섞인 곱똥과 피가 반반씩 나오고 정상적인 변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곱똥은 누런 고름이 함께 나오는 농변(膿便)을 말하는 것. 장의 어딘가에 염증이 생기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점막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전자내시경 검사와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검사 결과 L씨는 상태가 아주 심한 궤양성 대장염이었다. 놀랍게도 대장 절반 이상이 헐어서 점액과 피가 엉켜 있고 수많은 가성용종이 생긴 상태였다. 가성용종은 점막에 생긴 궤양으로 인해 정상 점막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출혈을 동반하므로 흔히 대장암으로 오진하기 쉽다.
L씨는 상태가 워낙 나빠서 우선 입원을 권했다. 수액을 공급하고 장 내 염증이 호전될 수 있도록 스테로이드 제제와 메살라진 제제를 투여했다. 환자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치료 효과가 더딜 것을 우려했지만, 다행히 1주일 만에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돼 곧바로 통원치료에 들어갈 수 있었다.
L씨는 이후 정기적으로 약물치료와 내시경 검사를 받으면서 현재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기 좋은 거제도로 전근했다며 멸치 한 박스와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궤양성 대장염에는 만성재발성, 만성지속성, 급성전격성 등 세 가지가 있다. 95%를 차지하는 만성재발성 대장염은 가벼운 장염 증상이 나타난 후 몇 주일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졌다가 수개월 또는 수년 후 재발된다. 재발을 거듭할수록 악화되므로 초기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만성지속성 대장염은 만성재발성 대장염과 비슷하지만 증상이 더 심하고 5~6개월 간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이 역시 즉각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
급성전격성 대장염은 일단 발병하면 39℃ 이상의 고열과 극심한 복통이 생기며, 방치하면 몇 주 안에 사망할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궤양성 대장염은 당뇨와 비슷해서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 병원 치료를 한다고 해도 치료 결과나 재발 여부를 알기가 상당히 어렵다. 약물치료로 증상이 호전됐다가도 3년 내에 재발될 가능성이 75%나 된다. 하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관리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만약 약물치료로도 효과가 없거나 출혈, 천공 등 합병증이 발생하면 대장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
/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이동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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