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변보시다 돌아가신 할머니, 나도 유전된다고?

입력 2008.05.16 10:16

몇 해전 이맘때 28세의 청년이 찾아와 심한 변비를 호소했다. 젊은 변비 환자 치곤 병색이 보였기에 단순한 변비가 아닐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육식보다 채식을 즐기는데도 변비가 심하네요. 아랫배에 뭔가 딱딱하게 잡히기도 하고요. 간혹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별다른 이유 없이 체중이 급격히 줄고 있어요.”

대장암이 의심돼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했다. 아니나다를까 좌측 결장암이었다. 조심스럽게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데, 환자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놀라기는커녕 알고 있었던 듯 침착한 모습인 것.

“외할머니께서 복부에 커다란 혹이 생긴 뒤 혈변을 보다가 55세에 돌아가셨어요. 그 때만 해도 6•25 한국전쟁 후 어렵던 시절이라 병명을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머니께서도 45세에 대장암으로 우측 대장 절제술을 받으셨거든요. 아무래도 유전인가 봅니다.”

청년의 말대로 선대로부터 내려온 유전성 대장암의 가능성이 높았다. 청년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검사도 시급했다. 얼마 후 6명의 가족들이 모두 병원에 찾아와 조직 검사와 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 6남매 중 큰 형과 둘째 누나에게서 대장암이 발견됐다.

다행히 청년을 포함한 3명 모두 비교적 조기 대장암이어서 수술로 완치될 수 있었다.  환자의 어머니는 본인 탓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며 자녀들과 손자들을 위한 예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전성 질환을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대장질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대장암은 진행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조기에만 발견하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위로하고, “정기 검진과 배변 변화 확인에 신경 쓸 것”을 조언해 주었다.

대장암 환자가 모두 가족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력은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가족의 경우 유전적 체질이 비슷할 뿐 아니라 식습관이나 생활 패턴이 유사하기 때문에 같은 병을 앓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유전성 대장암은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질환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장 전체에 100개 이상의 선종성 용종이 생겨 암으로 발전하는 가족성 용종증 대장암과 용종이 별로 생기지 않는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이 그것이다.

가족성 용종증 대장암은 전체 대장암 환자의 1% 정도에 불과하나, 앞서 소개한 청년과 같은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은 5~10% 정도로 비교적 발생률이 높다.

유전성 대장암은 가족의 병력을 토대로 진단 가능하다. 그러나 조상들의 병원 치료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가족력 확인이 어려운 데다가 핵가족 시대에 들어서면서 가족들의 숫자 또한 적은 탓으로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 가장 확실한 진단 방법은 염색체 검사를 통해 유전자의 이상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유전성 대장암은 일반 대장암에 비해 진단, 치료, 추적검사 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또한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 전체에 대한 선별 검사와 상담이 필요하다.

특히,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은 대장 이외의 위, 자궁, 난소, 신장 등에 암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 검사도 필수적이다. 수술법도 일반 대장암일 때 병소만 제거하는 것과 달리 대장을 완전히 절제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일반 대장암에 비해 수술 후 남겨진 대장 조직에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3배 정도 높기 때문이다.

유전성 대장암이 의심되면 가족 전체가 반드시 대장암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25세부터 1년마다 대변 잠혈 검사를, 2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35세 이후에는 대장암의 발생률이 높아지므로 매년 대장내시경을 시행하도록 한다. 가족 중에 대장암 발생 연령이 25세 이전인 사람이 있을 때는 그 환자의 대장암 발생 연령보다 5년 전부터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이동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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