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의학계에 신의 손이 존재할까?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수목 드라마 ‘뉴하트’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현실의 벽이 어떻든 간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늘 되새기며 생명의 고귀함을 이뤄내는 그들을 그리고 싶다.’ 드라마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작진의 이런 의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인물이 바로 최강국과 이은성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인간미 물씬 풍기고, 현실의 벽 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눈물과 고뇌가 뒤범벅인, 결국은 신의 손으로(?) 생명의 고귀함을 담보해내는 그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우리 시대의 완벽한 의사 상에 가장 근접한 설정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을 돌아보면 드라마 속 그런 세상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소위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의과대학과 전공의 과정을 통해 의사가 되는 훈련을 받고,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임상경험을 쌓은 의사도 종종 진단과 치료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정말 의학계에 신의 손이 존재할까?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처럼 관찰과 추론을 통해 정학한 진단에 이르고, 외화 속 맥가이버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통쾌한 기지를 발휘하는 의사가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 이런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해 본다면 결단코 ‘아니다’ 이다. 더러 인간미 넘치고 손재주가 있어 보이는 의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도 완벽한 신의 손을 가진 의사는 없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들마저 정확한 진단에 필요한 단서를 놓치거나 적절한 치료법을 두고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일까? 의학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의 학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내가 이 환자 반드시 살린다’라는 대사는 ‘반드시 살려내도록 노력하겠지만 사실은 살 지 죽을지 모르겠다’가 더 맞다. 그러면 현실에서 의사들은 이 불확실함의 적과 어떤 모습으로 싸워 나갈까? 결연한 의지보다 냉소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 누구의 판단이 맞을지 내기를 걸기도 한다. 불확실한 시술이나 수술을 행하면서도 환자들 앞에서는 평정을 고수하며 자신감을 보이기 위해 안간 힘을 쓰기도 한다.

첨단장비와 최신 지식으로 무장한 경우라도 이러한 불확실성은 의료 행위의 전 영역 속으로 파고든다. 진단 후 치료법을 선택, 경과 관찰, 잘될 확률과 잘못될 경우를 산정한 후 사회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이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통합하고 계산해내야 하는 ‘신의 손’들은 오늘도 예외 없이 무자비한 살얼음판 위로 내몰린다.

사실 의사들의 세계에서 이런 엄청난 불확실성과 싸울 때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는 일은 거의 없고 각자 눈치껏 배운다. 앞으로도 우리는 의학전문드라마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뉴하트’를 통해 또 다른 신의 손을 만날 것이다. 아무리 큰 위기상황이라도 선례가 거의 없는 문제에 직면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그들. 

그러나 인체의 생리는 기본적으로 가변적이라는 사실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불확실성의 유령은 지금도 어김없이 병원을 배회하면서 어떤 특정 진단이나 치료 결과의 확률을 결정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신의 손’을 가진 의사를 바라는 것은 현실 속에 홍길동을 기다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오삼세 세종병원 흉부외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