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싸우는 가장 좋은 무기는 긍정적인 생각
일상의 소소한 행복 느끼게 된 것은 암의 선물
‘자기 암(癌)과 싸우는 의사들’에 대한 암환자와 그 가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본지가 지난 11일부터 의사들의 암투병 이야기를 잇달아 소개하면서 그들의 암 투병 ‘노하우’를 배우려는 문의 전화와 이메일이 쇄도했다.
이희대(李羲大·53·직장암, 간과 뼈 전이) 영동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소장은 “만나는 암환자들마다 저를 보고 희망을 갖게 됐다고 한다”며 “의사가 말기 암환자면서 진료를 하니까 웬만한 암환자들은 나한테 와서 힘들다는 말도 못 꺼낸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게는 투병 생활 조언을 부탁하는 이메일이 전국에서 답지했다. 출판사 4~5곳에서 암투병기를 책으로 내자고 제안했고 방송 출연 요청도 이어졌다. 때론 ‘신비의 ○○○’ 식의 각종 건강식품의 검증을 부탁하는 우편물도 그의 진료실에 계속 쌓이고 있다.
그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어 외부 활동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며 “암예방을 위해선 욕심을 버리라고 해놓고 내가 일 욕심을 내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암 투병 안내 서적을 구상 중이다.
암 투병 생활 중 청국장의 항암 효과에 심취해 청국장 레스토랑까지 낸 홍영재(洪榮載·62·대장암, 신장암) 산부인과 원장의 병원엔 기사가 나간 후 진료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다들 청국장 집 전화번호 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려고 신문에 나간 것은 아닌데…”라면서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청국장 집을 찾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더라”고 말했다. 그의 암 투병기 ‘암을 넘어 100세까지’라는 책도 암 환자들이 최근 부쩍 많이 찾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만청(韓萬靑·71·간암, 폐 전이) 전(前) 서울대병원장도 요즘 라디오 방송에 특별 출연해 청취자들에게 암 투병 생활에 대해 조언해주고 있다.
이들 암 투병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8일이었다. 조선일보사에서 이뤄진 ‘암 좌담회’는 시종 유쾌했다. 이들이 정말 암 환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농담과 웃음과 희망의 말이 끊이질 않았다.
홍영재 원장은 한만청 원장을 만나자마자 “암에 걸리니까 원장님이 쓰신 책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를 다들 갖고 와서 7권이나 된다”며 “하지만 이젠 내가 쓴 ‘암을 넘어 100세까지’가 더 많이 팔린다더라(웃음)”고 말했다.
그러자 한 원장은 “내가 암에 늦게 걸렸으면 당신 책을 많이 받았을 텐데 아쉽다. 내가 간암, 홍 원장이 대장암, 이 교수가 직장암이니까 암 발생 위치가 상(上)·중(中)·하(下)(웃음)”라며 “나이로 보나 암 위치로 보나 내가 선배 노릇을 단단히 해야겠다”고 했다. 이에 홍 원장은 “이희대 교수는 암이 전이된 곳이 2곳이어서 그런 방식의 서열을 인정하지 않을 것(웃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 의료의 우수성을 입증한 의사들이라고 주장했다. 모두 국내 병원에서 우리 의료진에게만 치료받아 잘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 교수는 “주변에서 미국 가서 치료받으라고 권하는 사람도 많았고 미국 병원에 지인들도 많지만 우리 의료진의 기술이 미국에 비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한 원장도 “이 사실을 꼭 알려달라”면서 “우리나라 의료진이 수술을 더 잘하는 위암, 간암을 갖고 미국 병원에 가는 환자를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손으로 하는 수술은 손재주가 좋은 한국 의사들이 최고라고 맞장구쳤다.
한 원장은 “우리가 의사니까 고급 정보를 갖고 특별한 치료를 받았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일반 환자들도 한두 다리만 건너서 소개받으면 다 알 수 있는 의료진과 치료법에 대한 정보였다”고 했다.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골프 마니아인 홍 원장은 대장암과 신장암을 동시에 떼어내는 자신의 암 수술 날이 며칠 연기됐을 때 병원을 빠져나와 ‘마지막 라운딩’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살고 버디를 못 잡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버디를 해서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암 투병 의사들은 한결같이 “암과 싸우는 데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이 가장 중요한 무기”라며 “암 발병 이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암이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