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끊고, B형 간염 백신만 맞아도 암 30%는 줄인다!”

입력 2004.09.10 18:41

위암·간암 국내 치료율 미국의 2배… 조기검진, 좋지만 참여율 10%
여럿이 술잔 돌리고 국·찌개 함께 떠먹으면 위암 가능성…

인류는 엄청난 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암은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분야다. 세계적으로 볼 때 1년에 600만명의 사람이 암으로 숨지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도 6만3000명이 숨진다. 그러나 암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암 치료 기술의 현주소와 예방 수준은 어떠한가. 또 국내 암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과 변화가 필요한가.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 방영주 소장, 한국제약협회 김정수 회장이 만나 대담을 나누었다.

[김민배 주간조선 편집장] 암이 의료서비스의 영역을 넘어서 국가적인 산업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또 국내 암 치료기술도 선진국 못지 않은 기술경쟁력을 갖추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번 대담에서는 암에 대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국민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암 산업 분야에서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또 국민에게는 어떻게 암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내용들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위암 조기발견하면 치료율 97%

[방영주 서울대 암연구소 소장] 우선 암을 정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복하는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암은 굉장히 만성적인 질환입니다. 또 암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을 파괴합니다. 자동적으로 멈추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죠. 또 머리카락, 털, 손톱, 발톱 빼고는 어디든 다 생길 수 있는 것이 암입니다.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 세계적으로는 1년에 1000만명 정도의 암 발생자가 생기고, 우리나라는 10만명 정도입니다. 이 중에 세계적으로 600만명이 암으로 숨지고 우리나라에서는 6만3000명이 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은 상당히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또 암은 40대 중반 이후 50대에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스스로 노후대책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활동 기간을 박탈당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족들도 고통받게 마련이죠. 또 국가적으로 볼 때 경제적인 노하우가 가장 많이 축적된 국가의 핵심적인 브레인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민배] 상황이 이렇다면 암 치료기술은 어떤 수준인가요. 과연 암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방영주] 제가 보기에는 암 정복의 7~8부 능선은 넘었다고 봅니다.

정복의 방향은 잡았는데 그것을 매듭짓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선 암의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매우 많습니다. 원인을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암을 예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글리벡, 이레사 등의 항암치료제도 획기적입니다. 그러나 암을 정복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든 수준이죠.

[김민배] 그렇다면 현재 의료계의 암 치료, 예방 방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방영주]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예방적 차원에서 암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담배를 끊는 것이 최우선이고 한국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간암은 간염 백신을 맞는 것으로 발병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간암의 경우 간염에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태어날 때부터 B형 간염 백신을 다 맞는다면 간암의 70%를 예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금연과 백신접종으로 암 발생의 3분의 1을 줄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조기진단입니다. 대부분의 암은 조기진단하면 90% 이상 치료가 가능합니다. 특히 위암은 97%까지 생존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치료입니다. 치료에는 수술, 방사선 치료, 약물요법 등이 있습니다. 늦게 발견되더라도 암의 30~40%는 치료가 가능합니다. 최근에는 약물 치료의 중요성이 높아졌습니다.

[김민배] 일반인들이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까.

[박재갑]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암으로 인한 사망기여도를 보면 담배는 20~30년간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식생활은 발생기여도는 높지만 사망기여도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식생활의 암 사망기여도가 35%에서 5%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전립선암, 대장암, 유방암 등은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발견하기도 쉽고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바이러스 감염도 위험합니다. 간염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자궁암은 백신이 개발됐으나 아직 임상시험 중입니다.

일반인들이 암을 피하는 방법은 너무 쉬운 말 같지만 균형잡힌 식사가 중요합니다. 너무 짠 음식, 너무 매운 음식, 너무 탄 음식…. 결국 ‘너무’라는 말을 피해야죠. 그러나 야채는 예외입니다. 야채는 너무 많이 먹어도 암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방영주] 일상생활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술잔 돌리기는 정말 위험합니다. WHO에서 위암을 일으킨다고 보고된 헬리코박터균은 술잔 돌리기를 통해 전이될 수 있습니다. 또 국이나 찌개를 한 곳에 담아 놓고 퍼 먹는 것도 똑같이 위험합니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고 아름다운 문화지만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암의 10%가 음식을 이런 식으로 나눠 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염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소득층, 조기 암 검진 적극 활용해야

[김민배] 우리나라의 조기 암 검진 시스템과 암 예방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재갑] 우리나라의 암 정책은 정말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금연운동도 자리를 잡았고 감염 백신 접종도 잘 하고 있습니다. 또 조기검진도 저소득층 30%에 대해 무료검진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한 이후 지난해에는 간암, 올해 대장암이 추가되면서 5대 암 검진체계가 갖춰진 것입니다. 이분들에게는 보건소에서 모두 통보가 갑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같은 경우는 조기검진율이 50%에 이르지만 평균적으로 참여율이 10% 대에 불과한 것이 문제입니다.

[방영주] 그러나 어떠한 조기검진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쉽게 발견되는 암이 있는가 하면 세포 속으로 숨어들어가기 때문에 검진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은 예방적 차원에서 ‘암 예방 약’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유방암 발생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항에스트로겐제를 복용하면 줄일 수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김민배] 박 원장님께서는 담배의 위험성을 항상 강조하시는데 의학적 관점에서 담배의 위험성과 국가정책에 대해 진단해 주십시오.

[박재갑] 우리나라의 흡연율은 창피할 정도로 높습니다. 또 청소년 흡연율도 높습니다. 암과 흡연율은 함께 움직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세계 인구에서 한국의 인구는 0.76%에 불과하지만 암 발생률은 1%에 이릅니다.

담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130명이 담배 때문에 죽고 있는데, 이분들의 장례를 매일 아침 시청 앞에서 치른다면 담배 판매가 금지되지 않을까요.

하루 130명 담배 때문에 사망

[김정수 한국제약협회 회장] 금연정책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청소년 흡연은 법으로 막을 수 있겠지만 흡연가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막는 것은 많은 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금연을 계몽을 통해 할 것인지 아니면 법으로 강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박 원장님의 말씀처럼 10여년의 장기계획을 갖고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민배] 제약업계에서는 항암제가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생산한다고 보고 있습니까.

[김정수] 21세기에는 신약 개발이 서비스 산업이 아닌 국가의 전략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각국에서는 신약 개발이 무기 개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열정을 쏟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항암제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국가 전략산업인 것이죠. 시장 규모에서 볼 때 우리의 항암제 시장은 2000년에 200억달러 정도였는데, 2004년부터는 400억달러가 됐습니다. 전체 제약업계의 시장이 8~10% 성장하는 동안 항암제 시장의 규모는 매년 10~15% 정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SK의 선플라, 동화약품의 밀리칸, 종근당의 캄토벨이 국내 항암제 중 신약 3인방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5년이 지나면 상당히 획기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신약이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방영주] 첨단생명공학은 암 연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줄기세포도 결국 암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것이죠. 경제적으로 보자면 환자 한 명이 1년에 5000만원을 지불하면서 외국의 항암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산약이 없기 때문에 환자 한 명당 5000만원씩 외국 기업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죠. 그러나 신약을 개발하는 BT(생명공학)는 자동차, 휴대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그러나 불확실성 때문에 섣불리 투자하기 힘든 분야입니다.

[김민배]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의 암 연구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겠습니까.

[방영주] 우선 국내에 존재하는 연구 장벽을 제거해야 합니다. 새로운 항암제를 만들려면 의학, 생물, 화학 등 학제간의 협력이 필요한데 이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산학협력 구호를 외치지만 학교와 기업체가 같이 일을 하면 뭔가 부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 현실이죠. 끝으로 임상실험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려야 합니다.

[김정수] 신약을 하나 개발하는 데 돈이 8000억~1조원 들어갑니다.

시간은 7~10년이 걸리죠. 또 성공가능성도 엄청나게 불확실한 것이 항암제 개발입니다. 결국 위험도가 높고 대가는 큰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규모는 500개 회사를 모두 합쳐도 미국의 대표적인 회사의 매출에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신약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정하고 뛰어든 것이 1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만 보기는 힘듭니다. 제약회사들이 대학의 연구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방영주]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2분에 1명 진료’ 이것이 한국 의료계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하루에 100명의 환자를 진료하지만, 선진국에서는 3~4명씩 진료합니다. 대학의 의사들이 신약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죠.

[박재갑] 이런 점에도 국가 의료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저소득층에 돈을 지원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 돈을 내고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경제가 발전해야 의료 기술도 발전

[김민배] 이런 의료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암 치료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치료 기술에 있어서 우리나라 암 치료 기관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박재갑]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암 선진국인 미국, 일본과 차이가 없습니다.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이 미국,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는 것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위암, 간암 치료 성공률은 미국의 2배에 육박합니다. 한국인에게 흔한 암이고 빨리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폐암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5년 생존율이 15% 미만입니다.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MD앤더슨이나 우리나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미국과 일본의 치료 기관에서는 신약을 빨리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국내에서도 돈 있는 사람은 희귀약품 센터를 통해 외국의 신약을 구입할 수 있는 방편이 있습니다.

[방영주] 만약에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암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저는 당연히 한국에서 수술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나라 의사들은 1년에 300~400회의 수술을 합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1년에 70~80회 수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누가 수술을 잘 하겠습니까.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가 수술을 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선진국으로 암 수술하러 가는 사람들 보면 안타깝습니다.

[김민배] 그렇다면 주어진 조건하에서 암이라는 것을 정복하는 데 한국이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합니까.

[김정수]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국내 제약업체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힘듭니다. 우선 정부가 정책적인 마인드를 갖고 신약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후보 물질 중에 세계적인 신약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정부가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 주어야 합니다.

[방영주] 의료는 상당히 ‘경제 의존적’입니다. 국가 경제가 발전하면 의학, 신약 개발도 발전하는 것이죠. 돈이 없으면 약을 구하지 못하고, 약이 없으면 사람이 죽던 시절이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국민도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다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박재갑] 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철학이 분명히 서야 합니다.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국가가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건강을 위해 돈을 쓰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제약회사들도 내수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의사들도 신약 개발에 투신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결국 국가 경제와 정책, 의료기관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변신하는 것이 국내 암 산업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방책입니다.

( 주간조선 기자 yep249@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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