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담임약국 제도가 절실한 이유

헬스조선 약사칼럼

서울시약사회 학술위원장 /김예지 약사

75세인 남성 K씨는 감기나 치주 질환 때문에 가끔씩 내가 근무하는 약국을 방문한다. 얼마 전 요통 때문에 재활의학과에 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가져왔다. 한가한 시간인지라 평소와는 달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K씨 몸이 거의 종합병원 수준인 것을 알게 됐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치료를 받기 위해 유명 종합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퇴행성 관절염과 요통으로 또 다른 종합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또 전립선비대증을 치료받기 위해 친구가 소개해준 비뇨기과에도 다니고 있었다. K씨는 건강에 좋다는 여러 가지 건강기능식품을 열심히 챙겨 먹는 중이다. 미국에 있는 딸이 수시로 보내주는 오메가3, 글루코사민, 종합비타민과 아들이 보내주는 홍삼까지 다양하다. K씨는 우리 약사들이 약국에서 늘 만나는 흔한 노인환자 중 한 명이다.

노인 10명 중 9명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10명 중 6명은 3개 이상의 복합 만성질환은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병 치료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수시로 아플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가고 병원 가까이에 인접해있는 약국에서 약을 조제 받는다. 우리나라 노인들에 처방하는 약의 갯수는 입원 환자는 평균 18개, 외래 환자는 평균 6개라고 한다. 평소 약국에서 사먹는 일반 약, 집에서 각자 알아서 먹는 건강기능식품까지 합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약 권하는 사회’인 셈이다. 약은 그 자체의 독성이 있고 건강기능식품 역시 유효 성분을 농축한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약물과 건강기능식품을 동시에 복용하면 부작용이 커진다. 한 연구에 의하면 2개 약물 복용 시 부작용은 13%, 4개 약물 복용 시 38%, 7개 약물 복용 시 82%까지 부작용이 증가한다고 한다.

K씨는 고혈압 환자이므로 내과에서 혈압약을 처방할 때 뇌졸중과 협심증을 예방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함께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퇴행성 관절염과 요통이 있고, 가끔 감기에 걸리므로 진통소염제(NSAIDs)도 처방 받는다. 그런데 아스피린과 진통소염제를 동시에 복용하면 위장장애를 일으키고, 심한 경우에는 위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또 내과병원을 찾아야 한다.

노인 대부분은 약 부작용이 있어도 단지 나이가 들어 아픈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고,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또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K씨는 전립선비대증으로 항콜린 약물을 복용하는데, 이 약물은 변비, 안구 건조, 입마름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항콜린 부작용이 덜한 약을 복용하면 변비약을 먹을 필요는 없게 된다.

K씨는 하루에 약을 여러 번 먹는 게 귀찮아서 저녁과 자기 전 두 차례 나눠 먹어야 할 약을 저녁 식사 후 한 번에 먹는다고 한다. 이런 노인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고혈압 환자들은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저혈압이다. 많은 노인들이 밤에 두세 번 화장실에 가는데, 저녁 식후에 전립선 약과 혈압 약을 복용하고 비아그라까지 복용하면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으로 넘어져 고관절 골절이라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노인 환자는 외롭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의사 진료나 치료시 정말 물어보게 싶은 게 많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서 ‘2시간 대기 2분 진료’라는 현실과 마주하면 주눅이 들어 한 마디도 못하고 나올 때가 많다. 대형병원 앞 약국도 항상 바쁘니 약사에게 물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노인 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드나들 수 있고, 약사가 말벗도 되어주는 동네 약국을 자신의 ‘담임약국’으로 정하면 어떨까? 현재 단과 전문의 제도를 운용하는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은 여러 전문의(여러 의료기관)로부터 진료 후 처방을 받고 또 여러 약국으로부터 약을 조제 받는다. 이로 인해 여러 약을 복용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나, 올바른 약 복용법에 대해 잘 모를 경우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러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자신의 담임약국에서 조제 받고 복약 상담을 받는다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인들이 동네 약국을 찾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종합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동네약국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네약국을 방문했을 때 당장 약을 받지 못하더라도 처방전을 맡기면 그 다음 날 찾을 수 있다. 만성질환 약들은 당장 급하지 않다.

동네 약국 약사는 환자가 약을 제 때에 제대로 복용하고 있는지 꼼꼼히 챙겨볼 수 있다. 또한 환자가 복용하는 일반약과 상용하는 건강기능식품과의 상호 작용도 파악하여 이상 반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나아가 질환의 악화를 막고, 예방할 수 있는 생활 습관에 대한 상담이나 특정 질환에서 피해야 할 점을 알려줄 수 있다. 환자의 평소 몸 상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서 어느 병원, 어느 과(科)를 찾아가면 좋을지 알려줄 수 있다. 큰 병으로 도지기 전에 미리 적절한 진료를 받아 질환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노인들이 쓰는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4년 기준으로 19조 3551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5.5%이다. 30년 후인 2035년에는 130조 9406억 원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노인의료비를 줄이는 문제는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노인 담임약국 제도를 정착시키면 불필요한 약 지출 비용을 줄이고 노인의 건강도 개선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Reference

1. 박정호.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 2015. KDI 경제정보센터 (eiec.kdi.re.kr/common/bddown.jsp?fidx=292 )
2.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 지출 중장기 추계 연구’ 보고서. 2016.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3. 국민 건강 보험 공단,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건강보험 수입지출 구조변화와 대응방안(2012년), 2014. (https://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527595)
4. Chang Hyung Hong. Inappropriate Prescribing in the Elderly Patients. J Korean Med Assoc 2009; 52(1): 91 - 99
5. Hae-Young Park, Prescribed drugs and polypharmacy in healthcare service users in South Korea: an analysis based on National Health Insurance Claims data. International Journal of Clinical Pharmacology and Therapeutics, Vol. 54 – No. 5/2016 (369-377)
6. Oh JM. Drug use pattern and evaluation for appropriateness in geriatric patients. Research report of Korea Food & Drug Administration 2004; 04142: 8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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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약사 프로필

-헬스조선 약사 자문위원
-대한약사회 환자안전의약품본부 부센터장
-서울시약사회 학술위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외래교수
-미국 약사
-미국 임상 전문약사(BCPS)
-아시아약학연맹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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