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과 수술

함께 가는 길

보라매병원/정우영 교수

의사들이 환자 몸에 손을 대는 행위 중에 진찰 말고 시술이란 게 있고 수술이란 게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많이 구별해서 쓰이고 있었는데, 이렇다 할 만한 수술기법도 별로 없던 시절에는, 몸에 조금 상처를 내는 작은 조작도 모두 대단한 수술로 보였을 것이니 아마 이런 구분도 없이 쓰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취기법의 향상, 항생제발명 등으로 조금 더 과감한 개복, 개심 수술, 절단 등의 수술이 시작되면서 이보다 작은 조작들을 구별해 시술로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술이라는 말이 수술이라는 말과 차별화 되어 쓰이기 시작된 것은, 가르고 찢고 벌리고 잘라내고 하는 등의 수술이 이전 같으면 그대로 죽었을 환자들을 살려내기는 했지만, 이들 수술이 벌써 말부터가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환자 몸에도 무리가 되는 것은 사실이어서 덜 부담스럽고 덜 아프고 피도 덜 나고 시간도 덜 걸리는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 중에 급속히 개발되고 있는 진단 및 치료법이 늘어나면서 이들 대안을 구별하여 일컬을 때부터였을 것 같다.

옥스포드 사전에 나와 있기로는 수술 (operation)은 신체의 일부분을 개방하여서 손상된 부위를 적출하거나 수선하는 과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시술 (procedure)도 내과적 수술 (medical operation)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시술도 수술이기에는 별반 없고, 당초의 취지대로 덜 외과적이라는 점을 잘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 사회는 시술의 상대적 안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오인한 나머지, 시술 자체가 가지는 수술이라는 본질을 잊어 버리고 있다. 심혈관계통의 의사가 가장 흔히 시행하는 치료적인 시술 중에 하나가 심장에 있는 핏줄인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을 때 스텐트라고 불리는 금속 망사튜브를 넣어 넓혀 주는 행위이다. 가랑이나 손목의 동맥에 5mm 이내 길이로 피부만 절개하고 필요한 도구들을 넣어 심장까지 도달하여 시행하기 때문에 전신마취도 필요없고 종료 후 환자가 상처부위 통증을 호소할 일도 적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어서 입원해야 할 기간도 개심수술보다 훨씬 짧다. 

하지만 이 시술이 행해지는 과정 자체를 보면 그게 쉽지만은 않다. 몸 밖에서 모든 치료도구들을 통제하여 몸 안에 있는 장기에 대고 조작을 하려다 보니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머리카락 같이 가느다란 철사를 좁아진 혈관 내에 넣어야 하는데, 몸 밖에서 만지작거리는 이 철사가 원하는 대로 가주지 않거나 그대로 머물러 있어 주지를 않는다. 간혹 철사 끝이 하필 아주 가느다란 혈관 끝에 닿으면서 구멍을 내기도 한다. 누가 심장에 손을 대고 철사를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시술하는 동안 풍선이나 스텐트 등 다른 도구들을 철사에 끼고 왔다 갔다 움직여야만 하기 때문에 난감하고 불안한 상황은 늘 존재한다.

한술 더 떠서 좁아진 혈관은 딱딱하기까지 해서 좀처럼 펼쳐지지는 않는다. 결국 더 강한 압력으로 풍선이나 스텐트를 펼쳐야 좁은 부위가 펴지는데, 어떤 혈관은 이걸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버린다. 아니 깨져 버린다고 해야 딱딱한 혈관에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어느 부위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동맥출혈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런데 심장은 심낭이라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장기라서 출혈한 피가 갈 곳이 없이 심낭 안에 고이게 되고 정해진 공간 내에 혈액과 심장이 공존하면 심장은 혈액에 공간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에 납작하게 눌려버리게 되고 몸안에 다른 장기로 펌프질할 피를 받지도 주지도 못하기 때문에 환자는 그대로 극심한 혈압저하상황에 이은 사망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출혈이 시작되고 수분만에 일어나는 전격적인 상황이라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고 그 때 의사들이 머리털이 곤두서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도 못한다.

만일 이런 상황이 개심수술 중에 벌어진다면, 뜻밖에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손가락으로 터진 부위를 눌러 출혈을 막고 조치에 필요한 재료나 장비를 준비시킨 다음 터진 부위 주변 혈관을 실로 묶어 버리던지 터진 곳을 꿰매어 주면 된다.

결국 시술이라는 과정이 심장을 의사 손에 쥐고 하지 않다 보니, 시술 종료 후에는 수술 받은 환자들에 비해 비교도 안될 만한 경과와 모습을 보여 수술을 안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만족하지만, 시술을 받는 환자들 중 누군가는 이 어렵고 험난하며 극도의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되고 시술을 하는 동안 의사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발생하였을 대 대처하여야 하기 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의사와 비슷한 압박감 속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대개는 그렇게 말한다. 수술도 아니고 시술을 하는데, 무슨 사람이 죽느냐. 완전히 이건 의료사고고 명백한 의사의 과실일 뿐이라고. 그건 수술은 크고 위험한 것이고 시술은 당연히 안전하기만 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건 시술의 일반적이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일 때, 그리고 그런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져 있는 것이고, 위에서 예를 든 바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는 대처하기가 수술상황보다 더 불리하여 환자가 도리어 더 위험할 수도 있는 도박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게 시술의 숨어 있는 일면이다.

수술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시술이 갖는 유리한 면 (적은 통증, 빠른 회복, 필적한 효과, 적은 합병증)을 얘기해야 하니까 ‘내과적 수술’ 임이 분명함에도 ‘시술’ 이라는 말로 설명하여 치료의지를 갖도록 하지만, 수술과 비교한 상대적 장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시술을 만만하게만 생각하다가, 시술도 가질 수 있는 합병증, 후유증, 간혹 발생하는 사망 등에 대해 불가한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환자들 앞에서는 그래도 이것도 수술이라고 얘기했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술도 결국 수술이다. 현대식 수술. 수술이 무서울 때는 시술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안이해질 때는 그래도 이것도 수술이라고 생각하면 환자들도 의료진도 조금 더 상황을 잘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기고자 : 보라매병원 정우영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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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와 입원 진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생각하고 느껴보아야 하는 일상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환자들이 모르는 질병의 숨은 면, 그래서 벌어지는 오해, 의사들의 말 못할 고충, 내가 모르는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훈훈한 병원문화를 소망합니다.

보라매병원 내과
서울의대 내과 부교수
미국 미네소타 로체스터시 메이오클리닉 연구원 (2011~2012)
미국 뉴욕시 코넬 콜럼비아 병원 단기연수 (2002)
일본 기타큐슈시 고쿠라기념병원 단기연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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