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고혈압은 결코 가벼운 질환이 아닙니다.

세브란스병원/정남식 교수

우리나라 만 30세 이상 성인 중 약 1/3은 고혈압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고혈압 인구는 더욱 많아져 60대 이상에서는 절반이 넘는 사람이 고혈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구구조가 급속히 고령화 되어 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고혈압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고혈압인 사람 중에서 의사에게 고혈압을 진단받은 사람은 67%에 불과하며 나머지 33%는 자신이 고혈압인지 알지 못하고 지내고 있다. 한편, 고혈압을 진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는 전체 고혈압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약 40%에 이른다.

이와 같이 자신이 고혈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고, 고혈압이 있음을 알면서도 치료받지 않는 사람들이 비율이 높은 이유는 병의 심각성에 비해 증상이 별로 없고 그래서 당장 불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혈압은 소리 없이 그리고 서서히 우리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건강하게 보이던 사람을 갑자기 불구로 만들기도 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도 한다. 고혈압을 ‘침묵의 살인자’ 또는 ‘소리 없는 저승사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혈압이 어떻게 하여 우리의 몸을 망가뜨리는 지는 혈압과 혈액의 순환을 이해하면 알 수 있다. 혈액은 심장에서 피를 뿜어내는 압력인 혈압의 힘으로 온 몸 구석구석의 신체 장기에 배달되고 있다. 고혈압 환자는 온몸 구석구석에 있는 혈관을 향해 심장이 피를 뿜어낼 때마다 정상 혈압을 가진 사람에 비하여 강한 압력을 받게 된다. 권투로 치면 계속해서 강한 잽을 치는 모양새이다.

아무리 강한 잽이라도 한두 번 맞는 것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잽을 맞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러 번의 잽으로 인한 충격은 점차 쌓여가고 결국에는 상대편을 쓰러뜨리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고혈압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별 문제 없지만 혈관에 계속해서 높은 압력이 미치게 되면 결국 혈관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기관들은 여지없이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하여 망가진 혈관벽은 약해져서 조그만 혈압이나 혈류의 변화에도 견디지 못하고 터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장기(臟器)의 손상을 가져오게 되는데 신장, 눈, 심장, 뇌가 고혈압에 큰 영향을 받는 곳들이다.

신장은 수많은 모세혈관들이 촘촘히 뻗어 지나가면서 혈액 중의 노폐물들을 쉴 새 없이 걸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 그런데 만일 높은 혈압을 오랜 기간 동안 치료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게 되면 신장의 경화가 진행되고 노폐물 여과 기능은 점차 망가져 신부전 상태에 이르게 된다. 만성 신부전이 되면 투석이나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한다. 눈에도 많은 혈관들이 분포하는데 고혈압으로 인해 혈관들이 경화되고 터지게 되면 시력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실명할 수 있다. 심장은 우리가 잠자고 쉬는 동안에도 온몸에 혈액을 보내기 위해 계속하여 펌프질을 하는 부지런한 기관이다. 따라서 높아진 혈압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데,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근육이 커지고 단단해지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높아진 혈압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심장 근육이 점차로 두꺼워지고 뻣뻣해져 펌프기능이 손상된다.

이를 심부전이라고 하는데 심부전이 생긴 심장은 우리 몸에서 필요한 만큼의 혈액을 충분히 힘차게 밖으로 내뿜을 수 없게 되므로, 갑자기 뛰거나 흥분하는 등 심장의 운동량이 늘어나는 경우에는 숨이 가쁘고 호흡 곤란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여 두면 병은 더욱 진행되어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차고 전신이 부어오르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 한편 고혈압은 동맥경화를 촉진하여 협심증을 발생시키기도 하며, 심장으로 가는 혈류를 완전히 차단하여 심장 근육조직이 죽는 급성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혈압으로 인해 뇌로 가는 혈관이 손상되어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면 뇌졸중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혈압을 만만하게 생각하여 치료받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우리 몸 곳곳의 기관들이 타격을 입게 되고 결국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 고혈압은 결코 가벼운 질환이 아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 고혈압은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매우 중한 질병인 것이다.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고혈압인지 아닌지 아는 것이 첫 번째다. 고혈압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혈압을 측정하여야 한다. 여러 번 측정한 혈압이 높아서 고혈압으로 진단받게 되면 혈압약을 처방받고, 운동과 식사요법 등의 생활요법을 실시해야 한다. 식사요법은 싱겁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많은 육식은 줄여야 하며 다양한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견과류를 챙겨먹는 것도 좋으며 저지방 우유를 매일 마시는 습관도 중요하다.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외식은 멀리해야 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아침, 저녁으로 점차 기온이 하강하고 있는데, 이럴 때는 갑자기 추운 곳으로 나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뇌졸중은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부터 늘기 시작해 1월과 2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도 날씨가 추워지면 증가한다.

국민고혈압사업단은 고혈압 조기발견과 국민 계몽을 위해 2001년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기관이다. 설립 이래 자기혈압 알기 운동, 소금 섭취감량 운동 등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양한 홍보 및 관리 사업을 펼쳐오고 있으니 고혈압 관리에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기고자 :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혈압은 결코 가벼운 질환이 아닙니다.

'침묵의 살인자' 또는 '소리 없는 저승사자'라고 하는 고혈압의 위험성을 알리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의학정보를 제공한다.

세브란스 병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심장내과 교수
국민고혈압사업단 의료사업부 부단장
연세대학교 총동문회 운영부회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과대학장
연세대학교 의학정문대학원 원장
연세대학교 의료원 세브란스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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