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꽂힌 칼, 섣불리 빼다가 목숨 잃을 수도…

김원곤 교수의 영화와 흉부외과

서울대병원 흉부외과/김원곤 교수

1987년 붉은 수수밭(紅高粱, Red Sorghum)으로 데뷔한 장이머우 감독은 중국 5세대 영화의 대표주자다. 제 5세대 영화란 1982년 북경영화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1980-90년대의 새로운 중국영화 스타일의 한 흐름을 말한다.   

영화 연인(戀人)은 이런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2004년 작품으로 원제는 ‘십면매복(十面埋伏)’이고 영어 제목은 ‘House of Flying Daggers'이다(사진 0). 무협영화라기보다는 애정 영화에 가까운 이 작품은 전편에 걸쳐 장이머우 감독 특유의 색채감이 화면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서기 618년에 건립된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황금기를 이끌었던 왕조였다. 그러나 서기 859년, 당 왕조는 바야흐로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황제는 무능하고 조정은 부패하여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온 나라에 무장 반란군들이 들끓는다.

당시 반란 세력 중 최대조직으로 비도문(飛刀門)이라는 비밀조직이 있었다. 비도문은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부패한 관리들과 부자들을 응징하면서 신출귀몰하여 가난한 백성들의 큰 신뢰를 얻게 된다. 그런데 비도문의 본부는 바로 수도 장안성 부근에 있는 봉천(奉天)현에 위치하여, 나날이 커져 가는 그들의 세력을 감안할 때 장안성의 당 조정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조정은 봉천현에 비도문 본부를 반드시 찾아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후 봉천현의 관리들과 비도문과의 수년간 싸움이 이어지게 된다.

비도문은 그들의 방주가 전투에서 살해당하자 새로운 방주를 내세우며 봉천현의 압박에 강력히 저항한다. 이 무렵 봉천현의 관리인 리우(유덕화 분)와 진(금성무 분)은 열흘 안에 비도문의 새로운 방주를 잡아오라는 명을 상부로부터 받는다. 리우는 일찍이 모란방이라는 인근 홍등가에 새로 나타난 무희 샤오메이(장쯔이 분)를 비도문 관련 인물로 의심하고 있었다. 실제 비도문의 일원인 그녀는 눈먼 기녀로 위장하여 홍등가에 잠입해 있는 상태였다. 리우는 샤오메이를 체포하여 그녀가 죽은 옛 비도문 방주의 맹인 딸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필요한 정보인 신방주의 본거지에 대해서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속임수를 꾸민다. 즉 진을 '수풍' 이라는 떠돌이 무사로 변장하여 샤오메이를 감옥에서 구출한 뒤 그녀의 신임을 얻어내어 비도문의 은신처로 알아내려는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진은 샤오메이를 감옥에서 구출한 뒤 비도문의 은둔처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들을 겪으며 점점 서로에게 빠져 들게 된다.
그러나 마침내 비도문의 본부에 도착한 진의 앞에는 놀라운 사실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동료 리우는 사실 비도문 소속으로 3년 전부터 옛 방주의 지시에 의해 계획적으로 관가에 위장 잠입한 인물이었다. 이번 일도 대규모 관병들을 비도문 본거지로 끌어 들여 일망타진시키려는 그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샤오메이는 리우가 3년 전 관가로 떠나기  전 그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실제 장님이 아니면서 무술이 서툰 옛 방주의 눈먼 딸을 대신하여 진과 관병들을 속이는 역할을 한 것이었다. 심지어 모란방에서 샤오메이를 데리고 있던 기생 어미마저 사실은 비도문의 핵심 간부였다. 


어쨌든 비도문의 입장에서는 모든 계획이 예정대로 이루어지고 리우와 샤오메이는 3년 만에 정식으로 포옹한다. 그러나 리우는 이미 진을 사랑하게 된 샤오메이를 보면서 “나는 너를 위해 3년을 기다렸는데 불과 3일을 알게 된 그에게 마음을 뺏기다니…” 하고 한탄한다. 비도문 방주는 리우에게는 다시 관아로 돌아가 첩자 역할을 계속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진을 처치하여 입을 막을 것을 샤오메이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샤오메이는 진을 풀어 주고 그들은 다시 그들 간의 깊은 사랑을 확인한다. 바람처럼 모든 세상의 갈등에서 벗어나 둘이 함께 떠나 살자는 진의 제안에 샤오메이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뒤늦게 그를 쫓아간다. 하지만 말위의 그녀에게 리우가 던진 비도(단도)가 가슴깊꼽힌다. 이윽고 진과 리우간의 격투가 벌어진다.  

 긴 격투 끝에 마침내 진을 향해 리우가 비장의 비도를 던져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한다. 그 때 쓰러져 있던 샤오메이가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리우에게 비도를 던지지 말 것을 부탁한다. 만일 그가 비도를 사용하면 그녀도 자신의 몸에 꼽혀 있는 비도를 빼내 리우의 비도를 막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진은 그녀에게 심장에 꼽혀 있는 칼을 뽑으면 바로 즉사할 것이라고 소리치며 말린다.

그러나 마침내 리우의 손이 비도를 던지려는 동작을 하자 샤오메이 역시 그의 가슴의 비도를 뽑아 던진다. 그러나 샤오메이의 비도가 맞춘 것은 리우의 비도가 아니라 그의 손동작에서 튀어 나간 한 방울의 피였다. 리우 역시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샤오메이는 비도를 뽑은 뒤 심장 출혈로 진의 품안에서 죽어가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리우는 이런 그들을 멀리 한 채 눈 속에서 쓸쓸히 걸어간다.        

이 영화의 종반부에서 진과 리우 사이의 격투 장면이 펼쳐지는 도중에 리우의 비도를 맞고 쓰러져 있던 샤오메이가 자기 가슴에 꽂혀 있는 칼을 빼내어 진을 살리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본 진이 샤오메이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외친다. “不能拔刀, 刀一拔出, ?血脈噴張, 必死无”(칼을 뽑아서는 안 돼! 칼을 뽑으면 혈맥이 터져 죽고 말 것이야!). 그러나 결국 샤오메이는 진을 위해 자기 가슴의 칼을 뽑아 던지고 이 때문에 과도한 출혈이 시작되면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일견 무술영화의 평범한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 부분은 흉부외상 특히 영화에서처럼 가슴에 칼에 찔린 응급상황의 경우에 일반인들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혈맥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칼에 찔린 위치나 이어지는 장면들을 통해 판단해 보면 칼은 심장 아니면 대동맥을 직접 찌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서든 칼을 뽑아내려고 시도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칼은 비록 중요한 장기를 찌르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그 상태에서는 관통 부위를 막고 있어 더 이상의 과도한 출혈을 막고 있는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칼 주위로 피가 얼마든지 새어 나갈 수는 있지만 아무런 조처없이 칼이 그대로 제거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경우 환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현장에서 칼을 뽑지 말고 가능한 신속히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당시 샤오메이가 진의 부탁대로 칼을 뽑지 않았다고 해도 마땅한 후속조처가 있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종 결과가 어떻든 당장 눈앞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바로 죽어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장면 하나는 샤오메이가 리우의 비도를 맞고 쓰러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 진을 살리기 위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는 상황이다. 이를 흔히 영화 주인공들은 웬만해서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영화 구성상의 그렇고 그런 설정으로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상당한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장면이다.

영화에서처럼 심장이나 대동맥 등 큰 혈관이 칼에 찔리게 되면 일부 환자들은 과다한 출혈로 바로 현장에서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를 간신히 넘긴 환자는 영화 속의 샤오메이와 같은 과정을 밟게 된다. 즉 사망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많은 출혈 때문에 혈압이 심하게 떨어지게 된다. 혈압이 낮아지게 되면 추가 출혈에 대한 동력이 떨어지는 한편 피떡이 출혈 부위 주위에 생기면서 추가로 출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환자는 일시적으로 안정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즉, 혼수상태에 있던 의식도 돌아오고 혈압도 다시 조금씩 올라가게 된다. 바로 영화의 샤오메이와 같은 상태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안정을 차리는 듯 보이는 이 순간이 사실은 더욱 위험한 순간으로 치닫는 전 단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때 제대로 된 외과적 치료가 시행되지 않으면 상승한 혈압 때문에 이차출혈이 생기면서 다시 상태가 나빠지고 이 경우에는 대부분에서 환자는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흉부외상은 크게 둔상과 관통상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둔상은 피부 관통이 없이 외부 충격에 의해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는 경우이고 관통상은 피부의 직접 관통을 동반한 외상을 말한다. 둔상의 가장 흔한 예는 자동차 사고에서 볼 수 있으며 관통상은 자상(刺傷), 총상 등에서 나타난다. 샤오메이의 경우 칼에 의한(자상) 흉부관통상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원곤 교수의 영화와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의 영화와 흉부외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정회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심장연구소장 역임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정맥류 클리닉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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