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 민물회가 더 맛있다구요?

임호준기자의 헬스편집실

헬스조선/임호준 대표

강원도가 고향인 선배 한 분이 얼마 전 “한번 쏘겠다”며 민물고기 횟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선배는 “고향 사람이 운영하는 횟집인데 특별히 100% 자연산으로만 준비했다”며 권했습니다. 기생충 걱정 때문에 그러잖아도 찝찝하던 차에 ‘자연산’이라니 더 입맛이 달아났습니다. 양식 민물고기엔 기생충이 거의 없지만 자연산엔 간 디스토마 등 기생충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 “요즘 자연산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아마도 양식이겠지...”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식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모습 중 하나가 나무 젓가락이나 꼬챙이에 대변을 퍼서 학교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회충, 요충, 편충, 십이지장충 등 기생충들이 뱃속에 우글거렸기 때문입니다. 검사를 마친 뒤엔 교탁 앞에 쭉 줄을 서서 담임선생님에게서 기생충 약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러나 전국민 기생충 감염률이 1971년 84.3%에서 1997년 2.4%로 급감함에 따라 조금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던 이런 일들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요즘은 전국민 기생충 통계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제 기생충 걱정을 잊고 삽니다. 기생충을 조심하라면 “못 살던 시절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라졌거나 줄어든 것은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처럼 치명적이지 않은 기생충뿐입니다. 간암(담관암)을 유발하는 간흡충(간디스토마) 등은 크게 줄지 않았고 작은 와포자충, 람블 편모충 등 병원성 원충류는 오히려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뱀이나 너구리, 멧돼지 등 보신식품을 날로 먹다 기생충에 감염되는 사람들도 꾸준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귀여운 아이의 대장과 항문은 여전히 요충이 점령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간흡충(간디스토마)입니다. 간흡충은 간에서 알을 까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오래되면 담관염을 일으켜 담석과 황달을 유발하며, 일부는 담관암으로 진행됩니다. 건강관리협회 조사에 따르면 1971년 4.6%였던 간흡충 감염률은 1997년 1.4%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민 전체의 통계입니다. 국립보건원이 2002년과 2003년 전남 곡성군 주민 3231명을 조사한 결과, 18.5%(599명)에게 간흡충이 있었습니다. 민물고기 회를 즐겨 먹기 때문입니다.

간흡충은 송어, 향어, 붕어, 빙어, 피라미, 가물치, 모래무지 같은 민물고기를 회로 먹거나, 말려서 먹을 때 감염됩니다. 민물고기 양식을 하는 분들은 자연산 민물고기엔 간흡충이 많지만 양식 고기엔 없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100% 안심할 수 없으니 민물고기는 얼큰한 매운탕을 해서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한편 간 흡충은 일반 구충제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간흡충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엔 간 기능 검사, 채변검사, 간 CT 등을 통해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디스토마 치료제를 처방 받아야 합니다.

폐흡충과 요쿠가와흡충 감염환자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폐흡충에 감염되면 벌레가 대장, 복강, 횡격막을 뚫고 폐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심한 통증이 유발되며, 폐에서 20~30년간 기생하면서 폐렴, 각혈 등 폐결핵과 유사한 증상을 초래하게 됩니다. 폐흡충 감염의 매개체는 민물 게나 가재입니다. 한동안 거의 자취를 감추는 듯 했는데 최근 민물게장 음식점이 유행하면서 덜 숙성된 게장을 먹고 폐흡충에 감염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요쿠가와흡충의 매개체는 은어나 황어 등의 민물고기입니다. 요쿠가와흡충에 감염되면 설사, 복통, 장염, 장출혈 등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 장 폐색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국민전체의 요쿠가와흡충 감염률은 0.3~0.5%에 불과하지만 전남 곡성군 주민 조사에선 10.4%, 서울대의대 기생충학교실의 강원도 삼척시 오십천 주변 주민 조사에선 30%로 나타났습니다.

기생충에 감염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로는 뱀이나 멧돼지 같은 이른바 보신식품을 날로 먹는 것입니다. 특히 뱀이나 개구리를 생식하는 경우엔 고충(스파르가눔)에 감염될 수 있는데, 고충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신체 조직을 뚫고 들어가 기생합니다. 고충이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계로 침입하면 사지마비 증상이 나타나며 뇌기능도 파괴됩니다.

우리나라 고충 감염자의 수는 전세계 고충 감염자 수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동남아 구석구석을 누비며 뱀 등을 깡그리 잡아 먹는 유별난 식성 때문입니다. 뱀을 생식하는 사람에겐 토종 기생충인 서울주걱흡충에도 감염될 수 있습니다. 이 벌레에 감염되면 심한 설사와 복통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 밖에 오소리와 멧돼지를 생식하는 사람은 선모충에 감염될 수 있는데, 이 벌레에 감염되면 심한 고열, 근육통, 몸살, 얼굴부종 등의 증상이 수주일 지속되며, 치료하지 않으면 5% 정도 사망한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작은와포자충, 람블편모충 같은 과거 우리나라에 없던 기생충 감염자도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제교류 및 해외여행의 증가에 따라 국내에 유입된 원충류들인데 이 중 작은와포자충은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가축과의 접촉을 통해 전염됩니다. 감염되면 구토, 식욕부진, 복통 등과 함께 설사나 점액성 대변이 3~14일 정도 지속되며, 면역결핍 환자인 경우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2003년 국립보건원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남 7.8%, 강원 1.9%, 서울 0.5%의 감염률을 보였습니다. 람블편모충은 십이지장 점막에 흡반을 부착하고 기생하며 점액성 설사, 체중감소, 탈수 등을 유발하는데, 곡성군 주민 조사에선 1.4%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은 요충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림대의대 기생충학교실에서 1999년 춘천지역 유아원과 유치원 어린이 4711명을 조사한 결과 9.2%에게서 요충이 발견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나이 어린이의 5~10%가 감염돼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염 경로는 손과 입입니다. 대장에 기생하는 요충은 대장이 아닌 항문 주위에 알을 깝니다. 어린이들이 변을 본 뒤 손을 잘 씻지 않으면 항문에 있던 알이 손으로 옮겨오고, 그 손으로 다른 아이 손을 잡거나 문고리나 놀이기구를 만지면 다른 아이 손에 알이 옮겨져 입으로 감염이 됩니다. 때문에 놀이기구 등을 함께 쓰는 유치원 등 유아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많습니다.

요충에 감염되면 항문이 가려워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정서가 불안해지며, 학업성적에도 지장을 받는다고 합니다. 요충 감염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손을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식사를 할 땐 항상 손을 깨끗이 씻게 하고, 더러운 손을 입에 대는 일도 없게 교육을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구충제 복용으로 없앨 수는 있으나, 유치원 등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다시 감염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의료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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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조선일보 헬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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