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에 대한 비정신과 의사의 처방일수 제한 규정을 두고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사이의 논쟁이 뜨겁다.

지난 29일 오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4대 신경계 환자들 질환에 동반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모인 신경과‧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은 항우울제 처방권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 홍승봉 회장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장은 토론회에서 4대 신경계 질환(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환자의 우울증 발생 빈도가 약 47~56%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75% 이상이 항우울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그 원인으로 짚은 것은 지난 2002년 보건복지부가 SSRI 관련 고시한 "주요 우울증상이 지속적으로 2주 이상 계속되는 경우 상용량으로 60일 범위 내에서 인정함. 상기 용량 또는 기간을 초과해 약제투여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정신과로 consult 함이 바람직함"이라는 급여 기준이었다.

비정신과 의사들에게는 60일 이하의 SSRI 처방권만 허락되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은 "SSRI는 사람 뇌의 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호르몬의 재흡수를 억제해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키는 약으로 약물 기전이 굉장히 간단하고 안전한 약이라 외국에서는 일반의들도 사용할 수 있다"며 "심지어 북한에도 없는 규제가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역설했다.

홍 회장은 "비정신과 의사들은 자신이 돌보던 환자에게 60일 이후에는 SSRI 처방을 중단하거나 억지로 정신과에 보내야 한다"며 "환자들은 정신과에 가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홍 회장은 "우울증 약을 갑자기 중단함으로써 몇 명이 마포대교로 갔는지 확인은 해봤느냐"며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심각한 상황에서 안전하고 저렴한 항우울제인 SSRI의 처방권을 정신과 의사에게만 맡기는 현실이 불합리 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홍 회장은 우울증 환자의 정신과 의뢰기준인 4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경계 질환에 동반되는 우울증을 신경과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SSRI 항우울제 급여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강력 촉구했다.

여기서 홍 회장이 언급한 4가지 경우에는 `2가지 이상의 SSRI, SNRI 항우울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 `양극성 장애가 의심되는 경우`, `정신병 증상이 발생할 때`, `자살 사고가 있을 경우`가 해당된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놨다.

석정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는 "항우울제 처방에 있어서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며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라고 하지만 그 것은 나라별로 의료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석정호 이사는 "항우울제 처방권 제한을 푼다고 해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우울증은 약물 치료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심리사회적 평가 없이 단순히 항우울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오히려 조증으로의 전환이나 정서불안정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

석정호 이사는 "우울증 치료에는 심리사회적 요인과 정신역동을 고려한 정신치료가 병행돼야만 정상적인 회복을 할 수 있다"며 우울증 치료가 정신과 전문의에게 맡겨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심세훈 이사

심세훈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총무이사는 우울증 진단에 있어서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

는 "예컨대 한 양극성장애 환자가 15년간 우울 증상만을 보인 경우가 있었는데,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면 이 같은 환자의 질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의 첨예한 논쟁은 고형우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이 조속한 개선안을 내놓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끝이 났다.

고형우 과장은 "2008년부터 이러한 문제가 제기돼 왔지만, 논란 부분에 대한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아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9월 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각 과 전문가, 학회 등이 모두 참석하는 간담회를 개최해 의견을 모으고 최대한 빠른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