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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감기 환자에 대한 의료기관별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됐다. 의사들은 “병의 경중(輕重)이나 환자 특성을 가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방률을 발표해 ‘여론몰이’를 했다”고 불만이 대단하다. “오랜 진료 경험에서 비롯된 처방 노하우를 인정해야 한다”는 반응도 튀어 나왔다.
90%, 심지어 99%의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쓰는 의사들도 이렇게 할 말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변명은 도대체 무엇일까?
‘항생제 의사’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단순 감기가 아니라 세균성 합병증이 생겼거나 생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항생제를 썼다”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주장하는 항생제의 세균 합병증 예방 효과다. 많은 의사들이 항생제를 쓰면 실제로 합병증이 덜 생긴다고 믿으며, 이 믿음이 지나치면 “감기는 아예 처음부터 항생제를 써야 한다”로 발전한다. 이렇게 공공연히 말하는 의사들도 실제로 많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무책임과 실력 없음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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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세균성 부비동염이 걸리면 누런 콧물이 나오지만, 누런 콧물이 나온다고 모두 항생제가 필요한 세균성 부비동염은 아니다. 또 세균성 인후염의 초기 증상은 단순 감기와 비슷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경험도, 능력도 없는 의사들이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항생제를 써야 할 때를 놓쳐서 생기는 합병증은 예방할 수 있으므로 의사로선 손해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항생제 내성률이 세계 최고인 이유가 이처럼 ‘밑져야 본전’식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환자들도 문제는 있다. 감기는 시간이 경과해야 낫는 병이다. 그러나 많은 환자가 조급해 하며 주사제(항생제) 처방을 원하고 있으며, 이런 의사들만 “실력 있다”고 입 소문 내고 다닌다. “선무당이 아는 척하고 나서니 항생제를 쓸 수 밖에 없다”고 의사들이 변명할 수 있도록 핑곗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