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ADHD 길라잡이]
[편집자 주]
헬스조선이 일명 ‘힐링닥터’로 활동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공정규 박사의 ADHD 칼럼을 연재한다. ADHD 당사자와 부모가 진료실에서 자주 토로하는 고충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시각으로 톺아본다. 사공정규 박사는 30여 년 동안 ADHD를 비롯한 소아·청소년의 정서·행동 문제를 진료하고 연구해 왔다.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와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포항채움의원·사공정규 ADHD 클리닉 원장, 교육부 위(Wee)닥터 자문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헬스조선이 일명 ‘힐링닥터’로 활동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공정규 박사의 ADHD 칼럼을 연재한다. ADHD 당사자와 부모가 진료실에서 자주 토로하는 고충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시각으로 톺아본다. 사공정규 박사는 30여 년 동안 ADHD를 비롯한 소아·청소년의 정서·행동 문제를 진료하고 연구해 왔다.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와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포항채움의원·사공정규 ADHD 클리닉 원장, 교육부 위(Wee)닥터 자문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말썽 한번 제대로 피운 적이 없는데 ADHD일 수 있나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는 아동기에 시작해 청소년기와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신경 발달 장애다. 많은 사람이 ADHD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산만한 아이’를 떠올린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대화에 불쑥 끼어드는 아이를 생각한다. 그래서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는 ADHD와 거리가 멀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ADHD가 언제나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ADHD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도 있다. 과잉 행동보다 부주의가 두드러지는 경우다. 이런 아이들은 교실을 뛰어다니지 않는다. 큰소리를 내지도 않고 친구들을 자주 방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앉아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다른 곳으로 가 있다. 누군가 말을 걸면 처음에는 듣다가 중간 내용을 놓친다.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묻기도 하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한참 찾기도 한다. 준비해서 들고 나가려던 물건을 두고 나가는 날도 잦다. 방으로 무언가를 가지러 갔다가 다른 것에 눈길이 가면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름을 몇 번 불러야 대답하는 아이도 있다. 부모가 “듣고 있니?”라고 물으면 그제야 “네?” 하고 고개를 든다.
이 아이들의 어려움은 ‘시끄럽게 흐트러지는 것’보다 ‘조용히 놓치는 것’에 가깝다. 몸이 가만히 있다고 해서 주의까지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한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어느새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다. 주변의 작은 소리에 주의가 옮겨가기도 하고, 문득 떠오른 자신의 생각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도 한다.
라디오를 떠올려보자. 방송은 계속되고 있지만 주파수가 조금씩 어긋나면 소리가 선명했다가 흐려진다. 다시 맞추면 잘 들리지만, 어느 순간 또 잡음이 섞인다. 조용한 ADHD 아이의 주의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주의를 한곳에 붙잡아 두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은 발견이 늦어지기 쉽다. 눈에 띄는 행동은 주변 사람을 멈춰 세우지만, 눈에 띄지 않는 어려움은 쉽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특히 여아에서는 이런 모습이 행동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과잉 행동이 두드러지지 않고 멍하게 있거나, 잘 잊어버리거나, 조용히 딴생각하는 모습이 중심이면 ‘얌전한 아이’ ‘공상적인 아이’ 정도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런 아이들의 어려움은 아주 작은 ‘놓침’으로만 흔적을 남긴다. 물건 하나를 잊고, 이야기 한 대목을 흘리고,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진다. 하나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원래 좀 덤벙대는 아이”라고 지나가기 쉽다. 그러나 그 작은 놓침을 매일 반복하며 살아가는 아이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어려움일 수 있다.
큰 파도만 파도인 것은 아니다. 잔잔해 보이는 바다 아래에도 보이지 않는 물살은 흐른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조용하다고 해서 머릿속까지 고요한 것은 아니다. 얌전하다고 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아이가 얼마나 눈에 띄는가가 아니라, 일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는가이다. 때로는 가장 조용한 신호를 알아듣는 것이, 아이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 이 칼럼은 사공정규 포항채움의원·사공정규 ADHD 클리닉 원장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