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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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결과를 바꾼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생님 저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서 가끔 듣는 말이다. 누구는 부유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자라고 누구는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걱정한다. 누구는 한 번 들은 내용을 금세 이해하지만 누구는 몇 배의 시간을 들여도 따라가기 어렵다. 운동이나 음악,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할 수 없다고 낙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흔히 건네는 “노력하면 된다”는 격려가 상처로 남기도 한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뛰어넘기 어려운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환경, 경제적 조건, 건강, 지능과 기질이 다르다.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누군가는 평지에서 누군가는 무거운 짐을 진 채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한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세상이 공평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공평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에 굴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받아들임은 패배 선언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현실과 끝없이 싸우느라 힘을 소진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태도다. 즉 받아들임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스스로 가진 환경과 조건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건설적인 다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실제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공부에 큰 소질이 없는 사람이 평생 시험 성적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 사교적인 사람을 보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커다란 성공을 이룬 사람을 보며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정상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산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남보다 뛰어난가?’ 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들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하고 시간이 덜 아까운가?’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남들보다 좀 더 오래 견딜 수 있는가?’

재능은 반드시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능력,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한 태도, 정리를 잘하는 습관, 갈등을 키우지 않는 부드러운 성품,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세심함도 모두 훌륭한 능력이다. 세상은 눈에 띄는 재능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실제 삶을 지탱하는 이런 조용한 능력은 쉽게 간과한다.

“하지만 저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너무 평범해 보여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처음부터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도 괜찮다. 재능은 발견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경험이 쌓인다. 경험이 쌓이면 판단이 빨라지고 실수가 줄어든다. 결국 자신만의 방식이 생기고 나름대로의 능력이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마찬가지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성실하게 이어가는 사람 역시 드물다. 그래서 꾸준함은 그 자체로 강력한 능력이자 재능이 될 수 있다.

삶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한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반복의 시간이다. 타고난 재능으로 인해 달리는 속도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성실함과 경험으로 최종 도달할 수 있는 거리는 바꿀 수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한계가 노력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노력을 통해 자신이 가진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있고 그 안에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가장 빛나는 부분과 자신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비교한다. 다른 사람의 재산과 내 빚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과 내 실패를 비교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불안과 상처, 성공으로 인해 잃어버린 아픔까지는 알지 못한다. 타인의 삶은 빛나는 무대 위 모습만 보이지만 내 삶은 무대 뒤 번민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인다.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비교는 ‘나는 과거보다 조금 더 발전하고 단단해졌는가?’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살아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는 불리한 환경에서 출발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도움과 기회를 주고 한 번의 실패가 삶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사회가 지금보다 공정해지더라도 역시 사람 사이의 모든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더 건강하고 더 총명하며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과제는 분명하다. 주어진 조건을 인정하되 그것이 내 삶의 결론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출발선을 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걸어갈지는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삶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도 없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조건에 매달리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찾는 것. 그리고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존중이자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