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탄소 다이어트’… 세계 최고 친환경 병원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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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구로병원./사진=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병원의 경쟁력이 달라지고 있다. 의료 수준과 연구 성과를 넘어 탄소배출 감소, 폐기물 감축, 에너지 효율 등이 새로운 척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뉴스위크가 발표한 ‘2026 세계 친환경 병원’ 평가에서 국내 의료기관 네 곳이 최고 등급을 획득한 것도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병원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세… 마취가스·의료폐기물 주범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가 글로벌 조사기관 스타티스타와 함께 전 세계 6000여 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평가해 발표한 ‘2026 세계 친환경 병원’ 선정에서 국내 4개 병원(고려대 구로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이 최고 등급인 ‘나뭇잎 5개’를 획득했다. 전 세계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병원이 30여 곳에 불과하다.

병원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지만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 세계적 의학 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 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세계 배출량의 약 4.4%를 차지한다. 이는 세계 5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일본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수치다.

이 같은 환경 부담은 병원 운영 방식에서 비롯된다. 특히 대형병원은 24시간 365일 쉼 없이 가동되며, 무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과 가스를 소비한다. 특히 수술실에서 환자의 마취를 위해 사용하는 마취가스는 강력한 온실가스로 작용한다. 예컨대 흡입마취제인 데스플루란은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이산화탄소의 약 2500배에 달하는 대표적인 고탄소 마취가스로 꼽힌다. 여기에 진단용 영상 장비(MRI·CT)와 무균 환기 시스템 운영 등으로 인해 일반 상업용 건물 대비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량이 최대 3배 이상 높다.

감염을 막기 위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의료폐기물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주사기, 수혈 팩, 등 일회용 의료용품은 대부분 소각 처리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과 대량의 탄소가 배출된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지정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최근 수년간 연간 20만 톤 안팎을 기록하며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보건 및 환경 전문가들은 병원의 운영 방식 전환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경고한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감염병 확대와 폭염 등 또 다른 보건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냉온수기 전원 차단부터 친환경 마취까지… “비용 절감 효과”

고려대 구로병원은 이번 뉴스위크 평가 결과에 대해 지난 2022년, ESG실천위원회 출범 이후 축적해 온 친환경 활동이 그대로 반영된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교직원들이 일상에서 실천해왔던 에너지 사용 절감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ESG실천위원회 부위원장인 윤순정 경영관리실장은 “병원의 친환경 활동은 설비 투자보다 일상적인 운영 개선에서 시작됐다”며 “원내 냉온수기에 전원 타이머를 설치해 야간과 휴일에는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고, 업무 외 시간에는 PC와 모니터 전원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불필요한 전력 사용을 줄였다”고 말했다. 직원 피복 청구 방식을 개선해 불필요한 제작을 줄였으며, 병동에서는 일반폐기물과 의료폐기물의 분리배출 체계도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은 진료 현장으로도 확대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탄소 환자 식단과 친환경 마취가스 전환이다. 병원 급식에는 육류 중심 메뉴 일부를 두부와 콩 등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메뉴로 대체한 저탄소 식단을 도입해 급식 분야 탄소 발생량을 전년 대비 5% 줄였다. 또 온실효과가 큰 흡입마취제인 데스플루란 대신 상대적으로 환경 부담이 적은 세보플루란 사용을 확대해 현재 사용 비중을 약 70%까지 끌어올렸다.

친환경 전략은 병원 운영 효율성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 병원 측에 따르면 냉온수기 전원 관리 등으로 약 2060만 원의 전기료를, 외래 환자 수액 조제 방식 개선으로는 약 2200만 원의 수도요금을 아꼈다. 윤순정 실장은 “불필요한 에너지와 자원 사용을 줄이는 작은 변화들이 환경적 성과는 물론 실질적인 운영비 절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의료기관의 친환경 전략은 일반 산업과는 접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환자 안전과 감염 관리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 사용과 일회용품 사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윤 실장은 “진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게 주요 전략”이라며 “의료폐기물 역시 단순히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분류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설비와 제품은 비용 부담이 큰 만큼 개별 의료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친환경 설비 도입을 위해 의료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적 지원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