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끝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고기능 우울증 증상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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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증권사에 근무하는 40대 남성 A씨는 직장에서 큰 문제 없이 업무를 이어갔지만 일상이 달라졌다. 예전과 달리 낚시와 테니스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약속도 줄였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불안과 피로가 이어졌다. 스스로 우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불면증을 해소하고자 병원을 찾았다. 여러 검사를 마친 의사는 A씨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드림정신건강의학과 손제현 대표원장은 “직장생활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과 정신적 고통은 별개의 문제”라며 “취미 생활, 대인관계, 수면 등이 예전과 달라졌다면 정신 건강 문제를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 잘 해도 우울증일 수 있어

‘고기능 우울증’은 정신건강의학과의 정식 진단명이 아니다. 우울증 여부는 주요우울장애의 진단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즐거움 감소를 비롯해 수면·식욕 변화, 피로, 집중력 저하, 무가치감 등의 증상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표현은 직장에서는 맡은 일을 계속 해내지만 개인 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출근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좋아하던 활동을 하나둘 그만두는 식이다.

고기능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책임감, 완벽주의, 자기비난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 ‘내가 약해서 힘든 것이다’, ‘쉬면 도태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식이다. 이들은 책임감과 습관으로 업무를 계속해 내지만, 예전처럼 성취에서 만족을 얻거나 휴식으로 회복하지 못한 채 억지로 일상을 유지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업무를 계속해 내더라도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일을 마친 뒤 자신을 회복시키던 취미나 대인관계까지 끊어진다면 주의해야 한다.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상태를 단순한 피로나 스트레스로 넘기기 쉽다. 손제현 대표원장은 “버틸 수 있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며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진다면 우울 증상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분보다 루틴 먼저 회복해야

우울할수록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수 있지만,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회복하기 어렵다. 활동을 멈춘 상태가 길어지면 생활 리듬이 무너지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기도 어려워진다. 치료에서는 이를 끊는 ‘행동 활성화’를 활용한다.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수면과 생활 리듬을 회복하고 부담이 크지 않은 활동부터 다시 시작한다.

증상에 따라 항우울제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며, 갑상선질환 등 우울 증상과 비슷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도 확인한다. 손제현 대표원장은 “우울하다고 해서 평소 하던 일까지 모두 멈추면 회복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불편하더라도 수면과 식사 시간을 지키고, 원래 하던 활동을 조금씩 이어가면서 회피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번아웃과 다르다… 방치하면 만성화

고기능 우울증은 번아웃과 겹쳐 보일 수 있지만 구분해야 한다. 번아웃은 업무나 특정 스트레스 요인이 줄어들면서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우울증은 일과 무관한 시간에도 증상이 이어진다. 고기능 우울증을 방치하면 증상이 만성화되거나 재발할 위험이 커지고, 불안·공황 증상이나 알코올·흡연 등 물질 의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증상이 악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예전과 달라진 변화를 일상에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질 때는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주변에 알리고, 수면과 식사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등 생활 리듬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지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