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코올 중독 의사”… 삶 되찾기까지 그가 겪은 시행착오들

[이슈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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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세종병원 간담췌외과 이준서 외과장​은 알코올 중독 회복 모임에 참여하면서 중독에서 벗어났다. /부천세종병원 제공
한국인은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안부인사로 할 만큼 음주를 즐긴다. 술을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해 주는 윤활유이자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 요소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만약 자신의 의지대로 음주량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알코올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부천세종병원 간담췌외과 이준서 외과장은 환자에게 금주를 권하는 의사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 인해 오랜 시간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알코올 중독 회복 모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단주를 시작했고, 가까스로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유튜브와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는 그는 “혼자서는 어렵지만,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면 누구나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알코올 중독 경험을 담은 책 <나는 알코올중독 의사였습니다>를 출간했다. 
“알코올 중독을 겪고 회복하면서 자료가 너무 없다고 느꼈다. 알코올 중독을 다룬 책은 많지만, 단순히 의사가 술을 끊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체험기만으로 구성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중독인 사람에게 이런 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사이면서 알코올 중독과 회복을 둘 다 겪었으니, 내 경험과 조언을 있는 그대로 써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수술을 해서 사람을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이 책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와 가족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술에 빠진 계기는?
“대학교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2000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때만 해도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때 술을 마셨던 습관이 직장 생활을 할 때까지 이어져 자연스럽게 중독에 빠졌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봤을 때 기질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고, 그런 환경 때문에 중독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단주 직전 음주 패턴은 어땠나?
“소주 한두 병을 매일 마셨다. 소주 대신 맥주를 마시는 날도 있었지만, 술을 완전히 안 마시는 날은 드물었다. 저녁 식사 때나 일이 늦게 끝난 날에도 습관적으로 마셨다. ‘혼술’도 자주 했다. 업무에 지장이 없다 보니, 마시는 양이 조금씩 늘어나 새벽에 자주 깨고, 불면증이 생겼다. 그게 가장 괴로웠다. 의사 중 환자들에게 하는 조언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단주를 결심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들이 아내에게 대드는 것을 듣고,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해 아들 등을 때린 적이 있다. 훈계를 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결국 그 일로 아내와도 크게 싸웠다. 그런데 아이가 ‘더 혼나도 괜찮으니, 엄마 아빠가 싸우지만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처음 시도한 것은 무엇이었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술 마시는 횟수나 한 번에 마시는 양을 줄인다. 술을 아예 끊는 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1주일에 대여섯 번 마시던 것을 세 번으로 줄이기, 평일에는 마시지 않기, 주말에는 마시지 않기, 소주만 마셔 보기, 소주는 마시지 않기, 밖에서만 마시기, 밖에서는 마시지 않기 등 온갖 시도를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술을 줄이려면 의지가 필요한데, 한 잔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이제까지 쌓아왔던 의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절주는 성공도 힘들고 알코올 중독 재발 위험이 훨씬 크다. 일본에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음주량을 줄이는 절주 외래 클리닉도 있다. 절주가 어느 정도로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술을 줄이는 게 아니라 아예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회복을 돕는 모임 ‘익명의 알코올중독자(AA)’를 시작으로 금주를 시작했다. AA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2023년 9월쯤 혼자 1주일 정도 단주를 하다 실패해 폭음을 하고, 새벽에 깨 후회하고 있는데 갑자기 AA가 떠올랐다. AA는 알코올 중독을 겪은 다른 사람의 회복이나 단주 경험을 듣고,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나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퍼졌고,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 새벽에 AA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미국에서 모임이 열리고 있어 접속해 봤다. 그날 모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알코올 중독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과 그 과정에서 술이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후 매일 AA 모임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내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모임에서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자신의 단주 경험이나 팁을 나눠줬다.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채팅 앱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단주가 가능한가?
“가족이나 친구는 내가 단주에 실패하는 것을 여러 번 봐 왔고, 여러 번 실망시켰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또 실망시키기가 쉽다.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주변의 비난과 조롱이 거세지기 때문에 의지도 약해진다. 하지만 같은 괴로움을 겪었던 동료는 실망시키기가 어렵다. 실제로 모임에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멤버들과 내적 친밀감이 생겼고,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술을 마시려다가도 잔을 내려놓는 일이 많았다. 후배가 들어왔을 때는 ‘이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술을 마시고 싶어도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됐다. 나의 경우 책까지 썼으니 더더욱 다시 마시기가 어렵다. 이런 공동체 의식이 점점 술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모임에 참석하는 것 자체만으로 치유가 되기도 한다. 단주에 여러 번 실패하면, 술을 끊고 싶어도 이야기할 곳을 찾지 못한 채 고립되기 쉽다. 하지만 모임에 참석하면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하기도 하고, 실제로 처음 모임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 ‘AA 길잡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모임은 한국 지부의 정식 AA 모임은 아니다. 예전에 정식 모임에 한 번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약간 경직돼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병원에서 AA 추천을 받고 모임을 나가봤는데 나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알코올 중독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기 때문에 AA가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신규 회원이 유입되기도 쉽지 않다.

나는 회복 과정에서 AA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좀 더 유연한 형태의 모임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회복 중인 알코올 중독자’라는 개념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카페를 개설했다. 한국 지부에서 운영하는 AA에 참여해 보고, 만약 스타일이 잘 맞지 않는다면 내가 운영 중인 카페를 통해 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다. 현재 1300명 정도의 회원이 모여 있다. 80~90% 이상이 30~40대이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비교적 잘 된다.”

-모임에 참여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포털 사이트에 ‘AA 길잡이’를 검색해 카페에 가입하고, 하루에 한 번 온라인 모임에 참석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모임에 매일 참여하는 것이다. 모임은 매주 평일 아침 6시 10분, 낮 12시 30분, 밤 10시에 약 40분간 진행된다. 특별한 규칙이 없고, 따로 요금이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주제는 그때그때 정해진다. 최근에는 단주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봤을 때 달라진 점, 단주로 인한 여유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AA 모임을 통해 변화한 사람이나,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
“많다. 이혼 위기까지 갔다가 단주를 시작한 뒤 부부 관계를 회복한 사람, 고령인데 오랫동안 술을 끊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단주를 성공해 눈물을 흘린 이도 있다. 20대인데 알코올 중독으로 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회복한 사례도 있다.”

-술을 끊은 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마음이 편해졌다. 술을 마시면 즐거운 감정도 크게, 슬픈 감정도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주 후 감정의 기복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잔잔해졌다. 또 단주 후 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느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물론 하루 종일 몸이 가볍고 편하다. 블랙아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겐 매우 큰 변화다.

관계의 미니멀리즘도 실천할 수 있게 됐다. 술을 좋아하면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 시간을 ‘네트워킹’이라고 합리화하게 된다. 단주하면서 그런 일들이 사라져 삶의 질이 올라갔다.”

-알코올 중독을 겪은 사람들이 단주 후 여유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술을 찾는 경우도 있다. 여유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했다. 유튜브를 운영하고 책을 쓰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지금은 행복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해 여유 시간에 독서도 많이 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환자를 볼 때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환자 중에서도 단주를 안 하면 위험한 이들이 많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간 크기가 커진다. 정상적인 간은 가장자리가 날카롭지만, 크기가 커지면 뭉툭해진다. 그런 현상을 보면 꼭 위험 단계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추상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환자가 의향이 있는 경우 AA 모임을 비롯해 단주를 위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안내해 준다. 실제로 환자 중에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분도 있다.”

-술 생각이 날 때나, 피할 수 없는 술자리는 어떻게 대처하나?
“갈망감을 유발하는 요인을 제거하거나, 가장 괴로웠던 증상에 집중하는 방법이 있다. 보통 배고프거나, 화가 나거나, 외롭거나, 피곤하면 술을 마신다. 이걸 ‘배화외피’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플 때 술을 마시는 스타일이라면 퇴근하자마자 건강한 저녁을 배불리 먹는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알코올 중독 당시 가장 괴로웠던 불면증 증상을 떠올리는 것이 효과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갈망감이 들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알아 두는 게 좋다.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서도 회식이나 술자리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술이나 담배를 해야만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죽기 전에 ‘프로젝트를 하나 더 할걸’, ‘전무까지 승진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대개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걸’,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볼걸’ 같은 후회를 더 많이 한다. 스스로의 건강과 회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과 회복의 과정이 양지로 나오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인터뷰, 책,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회복 사례와 방법이 알려져야 한다. 그러면 더 많은 모임이 생겨날 거고, 알코올 중독이나 회복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알코올 중독을 다룰 때도 단순히 ‘술병을 치워라’, ‘마음을 다스려라’가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라’와 같이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해야 한다.

연예인들이 술을 마시는 방송이나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음주가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즐거움을 잃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중독에 빠져 있어도 끊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중독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중독에서 회복하는 방법은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음주 문화에 계속해서 노출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알코올 중독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아마도 많이 힘드실 것이다. 나도 그 경험을 해 봤기에 어떤 기분인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단주하면 하루하루가 편해질 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장기적으로 인생 전체가 편해진다. 혼자 중독에서 벗어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공동체 안에서 동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아 함께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