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의과대학 부속 병원에 근무하다보면, 일 년에 몇 차례씩 학생 수업을 하게 된다. 의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실습 시간에 충분히 연습하지 않으면서도 막연히 시험 때가 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평소에는 대강하고 시험 볼 때 정신 바짝 차리면 된다”고 자신한다. 막상 시험이 시작되면 긴장과 불안 때문에 손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요한 순간이라고 해서 갑자기 없던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긴장할수록 사람은 평소 몸에 밴 방식대로 행동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항상 학생들에게 “실습 기간 동안 충분히 훈련해서 술기를 내 몸에 밴 습관처럼 만들어야 실기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얘기해주곤 한다. 단지 실기 시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도 중요한 경기 당일 갑자기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실행하지 않는다. 수없이 반복해 몸에 익힌 동작을 극도의 긴장 속에서 그대로 재현해 내어 정상에 오른다. 평소의 훈련이 결정적인 순간에 실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로, 발표할 때 말이 빨라지는 사람은 아무리 천천히 말하겠다고 다짐해도 청중 앞에 서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빨라진다. 화가 날 때마다 소리 지르는 사람이 “다음에는 절대로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역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술을 마시거나 동영상만 들여다보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나쁜 습관을 단순히 의지 부족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좋지 않은 습관도 나름의 이유과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머릿속이 복잡하고 불안할 때 휴대전화를 보는 행동은 잠시 걱정을 잊게 해준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시면 순간적으로 긴장이 줄어들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당장은 부담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동반응으로 굳어져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생각할 틈도 없이 안 좋은 행동부터 나오게 된다는 데 있다.
어떻게 해야 나쁜 습관을 없애고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을까? 매 순간 강한 정신력으로 나를 통제하려는 방식은 솔직히 오래가기 어렵다.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만들려면 거창한 결심보다 반복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앞으로 매일 한 시간 이상 운동하겠다”는 목표보다 “저녁 식사 후 20분만 걷겠다”는 계획이 낫다.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는 것보다 “잠들기 전에 10페이지씩 읽어야지” 결심하는 편이 실천하기 쉽다. 행동할 시간과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정하면 더 도움이 된다. ‘시간이 나면 운동한다’가 아니라 ‘퇴근한 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파트 주변을 3바퀴 걷는다’고 정하는 식이다. 작은 보상도 필요하다. 운동을 한 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적어본다든지 달력에 표시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도 좋은 습관을 강화하게 만드는 보상이 된다. 습관은 행동 뒤에 따라오는 작은 만족을 통해 강화된다.
또 다른 팁으로 나쁜 습관을 없애려고 할 때 단순히 참는 것보다 대신할 행동을 정하고 환경을 조절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화가 나면 곧바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라면 일단 메모장에 화나는 내용을 적어보고 10분만 참아보는 것이 도움 될 수 있다. 스트레스 받을 때 술부터 찾는 사람이라면 집안의 술을 없애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우선 샤워를 하거나 잠깐 걷는 행동으로 바꿔볼 수 있다.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보는 습관이 있다면 휴대전화를 침대 밖에서 충전하고 머리맡에 읽기 편한 책을 놓아두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새로운 습관을 처음부터 매일 완벽하게 실천하기란 어렵다. 하루 이틀 실행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루 운동을 쉬었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 폭식하거나 화를 냈다고 그동안의 모든 변화가 실패한 것도 아니다. “역시 나는 안 된다”고 포기하는 생각이 습관을 더 쉽게 무너뜨린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흐트러진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익힌 사람이다. 습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연속적인 기록이 아니라 중단했을 때 빨리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철학자 윌 듀런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탁월함은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반복되는 습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한 번 일찍 일어나고 한 번 운동하고 한 번 화를 참았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은 행동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이 나의 생활 방식이 되고 결국 나 자신이 된다.
대단한 결심과 행동이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삶을 바꾸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이다. 좋은 습관은 나를 억누르는 규칙이 아니라 힘들 때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나를 대신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안전장치이다. 오늘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반복이 가능한 작은 행동 하나를 정해보자. 인생이 흔들리고 지치고 괴로울 때 끝까지 나를 붙잡아주는 것은 강한 의지가 아니라 어쩌면 평소 몸에 밴 작은 습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