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 후]
암 치료를 하는 의료진은 매일 두려움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환자들을 마주합니다. 헬스조선 아미랑은 강릉아산병원 유방외과 윤광현 교수 칼럼을 연재해 '암 치료와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를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이 치료를 견디게 했는지, 무엇이 환자를 다시 삶으로 돌아가도록 했는지 등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유방암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 오랫동안 유방암 생존율에 방점을 두었다. 수술을 잘하고 수술 후 필요한 추가 치료로 재발을 줄이며 환자들이 더 오래 살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여겼다.
지난 수십 년간 유방암 치료는 생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고 치료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수술은 점점 덜 침습적으로 변했고 항암제와 표적 치료제, 면역 치료제의 발전으로 이제는 암의 특성에 맞는 개인 맞춤형 치료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나 역시 새로운 치료제와 임상시험 결과를 누구보다 빨리 익혀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의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개개인 암의 특성을 정확히 설명하고 왜 수술이 필요한지, 수술 후 이어지는 치료가 왜 필요한지를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 역시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힘든 치료를 견딜 수 있도록 근거를 설명하고 환자와 함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외래에서 수천 명의 환자를 만나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은 암 자체가 아니라 치료를 마친 뒤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언제부터 다시 출근할 수 있을까요?”, “팔은 언제 마음껏 써도 될까요?”, “등산이나 수영은 해도 되나요?”, “비타민이나 영양제는 먹어도 괜찮을까요?”, “손주를 안아도 되나요?”….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설명과 환자가 실제로 궁금해 하는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차이는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외과의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수술 전후 정보와 환자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서로 다르다.
의사는 질병과 수술, 재발과 합병증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지만 환자는 수술 후 통증과 상처 관리, 활동 범위, 일상으로의 복귀처럼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건 암을 어떻게 치료하는가가 아니라 치료를 마친 뒤 어떻게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였다. 그들에게 치료의 끝은 수술도, 항암 치료도 아니었다. 다시 본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비로소 치료의 끝이었다.
많은 환자가 걱정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는 수술 후 일상생활에 큰 제약 없이 지낼 수 있다. 상처가 아물면 집안일도 다시 할 수 있고 직장 복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행을 가고 등산을 하고 운동을 즐기는 것도 대부분 문제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유방암 수술 후에 팔을 많이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팔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종종 계셨다. 수술 부위가 벌어질까 걱정되고 팔이 코끼리 다리처럼 붓는 림프부종이 생길까 두려워 팔을 몸에 붙인 채 생활하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수술 부위와 겨드랑이에 유착이 생기면서 피부와 근육이 당기고 어깨 관절이 굳어 팔을 끝까지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머리를 감거나 높은 선반의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평범한 동작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수술 후에는 상처가 회복되는 시기에 맞춰 조금씩 팔을 움직이고 스트레칭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적절한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이 체력 회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며 단계적으로 시행할 경우 림프부종의 위험을 의미 있게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오히려 몸을 너무 아끼기보다 조금씩 움직이며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린다.
직장에 복귀하는 것 역시 많은 환자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을까 봐, 일을 하면 재발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직업을 유지하거나 사회활동을 지속하는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더 좋은 예후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물론 직장생활 자체가 생존율을 높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시 출근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역할을 이어가는 과정은 몸의 회복뿐 아니라 마음의 회복에도 큰 힘이 된다.
외래에서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영양제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거나 과장된 내용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미국의 여러 암 전문기관과 통합종양학 전문학회에서 건강기능식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체계적으로 평가해 환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이들이 전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특정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이 유방암의 재발을 막거나 생존율을 높인다는 확실한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신체활동, 필요에 따른 요가나 명상 같은 통합요법이 치료 후 삶의 질을 높이고 일부 치료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특별한 음식이나 영양제 하나를 찾는 일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생활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환자들은 일상의 사소한 선택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독감이나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맞아도 되는지, 찜질방이나 온천을 가도 되는지, 염색이나 파마를 해도 되는지, 피부 시술이나 보톡스를 받아도 괜찮은지 묻는다. 물론 항암 치료 중이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시기, 수술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치료가 끝나고 몸이 회복된 뒤에는 대부분 특별한 제한 없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유방암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모든 것을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 외래에서 환자들을 다시 만날 때면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두려움에 굳어 있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유방암 치료의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암을 없애고 생존율을 높이는 데만 있지 않다. 다시 출근하고 운동하고 여행을 떠나고 손주를 안으며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가 ‘암 환자’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 순간이 치료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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