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투석 진료비 6조 원”… 만성콩팥병 국가 관리에 ‘구멍’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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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클립아트코리아
국내 성인 9명 중 1명은 만성콩팥병(CKD)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실제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3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당수 환자가 질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질환 규모와 진행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조기 발견과 예방 중심의 정책은 물론 향후 투석 인프라 확충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만성콩팥병을 국가 차원의 관리 대상 질환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는 느는데 국가는 모른다?

대한신장학회가 최근 발간한 ‘만성콩팥병 팩트시트’에 따르면 만성콩팥병은 국내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 초기에는 자각증상이 거의 없어 상당수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병이 진행되고, 결국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필요한 말기콩팥병 단계에서야 진단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국가가 질환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은 국가암등록통계를 통해 환자 발생과 치료 현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지만, 만성콩팥병은 병기별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는지 등을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등록·관리 체계가 사실상 부재하다. 현재 환자 규모 파악은 대한신장학회가 운영하는 말기콩팥병 환자 등록 사업(KORDS)에 의존하고 있다.

환자 규모와 질병 진행 단계에 대한 기초 통계가 없다 보니 정책 수립도 사후 대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신장학회 이동형 홍보이사는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면 투석으로 진행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는데, 지금은 그런 정책을 설계할 기초 자료부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전 예방과 조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만성콩팥병 치료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환자 1인당 연간 의료비는 약 2837만원에 달하며, 만성콩팥병 연간 총진료비는 이미 2조8300억원을 넘어섰다. 대한신장학회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10년 내 투석 관련 진료비가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역이 투석 담당하는데… 검사 기반 약화 ‘우려’

이와 함께 최근 정부 정책이 만성콩팥병 투석 치료 인프라를 흔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국내 혈액투석 환자의 약 70%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들은 혈관수술이나 응급치료 등을 위해 상급종합병원을 찾지만, 이후에는 대부분 거주지 인근 투석기관으로 전원돼 수년에서 수십 년간 치료를 이어간다. 만성콩팥병의 장기 관리와 투석 치료에서 지역 의료기관이 사실상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은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검사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 투석을 받는 만성콩팥병 환자는 신장 기능 변화, 전해질 이상, 빈혈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인 혈액·소변검사가 필요하다. 검체검사 위탁 과정의 보상체계 바뀌고 의원급 의료기관의 검사 관련 부담이 커질 경우, 만성콩팥병 환자를 관리하는 지역 의료기관의 검사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형 이사는 “투석 환자는 2주 또는 1달 단위로 검사를 통해 투석 적절도와 빈혈, 전해질 이상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필수적인 검사 기반이 흔들리면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가 위축되면 진단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말기콩팥병 원인의 47%가 당뇨병인데, 당뇨 환자가 콩팥병 조기 진단을 위해 받아야 하는 단백뇨(뇨검사) 선별검사 수검률은 26~5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이사는 “정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에서 투석 환자를 관리하는 의료기관의 진료 기반은 위축되고 있다”며 “만성콩팥병을 필수의료로 지정해 지역에서도 안정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 한 ‘만성콩팥병 관리법안’은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국가 만성콩팥병 관리위원회 설치 및 5개년 종합계획 수립 ▲100% 전수 역학 추적이 가능한 국가 환자 등록체계 구축 ▲인공신장실 인증제 법제화를 통한 투석 질 관리 ▲재택투석(복막투석) 및 신장이식 활성화를 위한 재정적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