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질병 X'는 또 온다… 인류 구할 '만능 백신' 나올까?

입력 2021.03.03 15:12

WHO, 초유의 감염병 예언… 백신 제조 '플랫폼 기술' 급속 진화

바이러스
질병 X에 대한 백신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2018년 WHO가 대예언을 했다. ‘인류멸망을 막기 위해 연구개발을 서둘러야 하는 9개 감염병’ 목록에 ‘질병 X(Disease X)’를 포함한 것이다. 여기서 X는 수학에서 배우는 그 미지수 ‘X’다. 당시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추후 세계 대유행을 일으킬 신종 전염병이 올 것이라 봤다. 그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질병 X는 2019년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인류 앞에 나타났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시작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두 번째, 세 번째 질병 X가 우리 앞에 나타나리라 예측한다. WHO가 질병 X를 목록에 올리자 미국 국립 알레르기 연구소 앤서니 파우치 소장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는 모든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전염병들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우리는 다음 전염병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차근히 준비돼 온 ‘질병 X’ 대응
‘질병 X’에 대한 대응은 WHO가 발표하기도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는 “이미 전부터 예상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고 있었다”며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이론으로만 있었던 것들이 빠른 진척을 보이며 실제로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래 출현할 전염병 유행을 막기 위한 백신 개발’을 목적으로 ‘CEPI(전염병예방혁신연합)’라는 기구가 2017년 설립됐다. 노르웨이, 일본, 인도, 독일 등 다양한 국가와 빌 앤드 멀린다 게이트 재단 등이 기구에 투자하고, 기구가 백신을 연구하는 기관이나 기업에 후원금을 투자해 왔다. CEPI는 제시간에 질병 X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시간이 오래 걸리던 백신 개발 방식을 버리고, ‘플랫폼 기술’이라는 신개념 백신 기술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플랫폼 기술’은 백신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문제가 되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만 갈아 끼워 넣어 백신을 개발하는 기술이다. 그렇게 나온 게 바로 지금의 ‘모더나’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접종된 코로나19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플랫폼 기술’을 이용한 백신이다. 백신 설계를 총괄한 옥스퍼드대 사라 길버트 교수는 “2014~2016년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1만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며 “이때부터 우리는 질병 X를 고려해왔고, 빠르게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빠른 백신 개발할 수 있게 한 ‘플랫폼 기술’
플랫폼 기술을 이해하려면 백신의 원리부터 알아야 한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인체 세포 대신 결합할 항체를 몸속에 만들어내도록 돕는 약제다. 기존 사용되던 대표적 백신인 사백신(死vaccine)의 작용 원리를 예로 살펴보자. 독성은 없지만, 일반 바이러스와 똑같은 구조를 가진 죽은 바이러스를 몸속에 넣으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자극된다. 면역세포는 이 바이러스 구조에 대항할 항체를 만들어내게 되고, 다음에 만났을 때도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기억(메모리 B세포)하고 학습한다.

백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백신처럼 전체 바이러스 구조를 다 넣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결합 부위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로 들면, 바이러스와 일반 세포가 결합하는 부위이자 항체가 결합하는 부위인 ‘스파이크 단백질’(바이러스 표면에 돋아난 돌기)만 체내에 들어가면 우리 몸이 항체를 만들도록 유도 할 수 있다.

플랫폼 기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처럼 특정 중요 부위가 체내에 그대로 전달·발현되도록 버스 같은 이동 수단(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다. mRNA, DNA,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등이 플랫폼의 종류로 개발되고 있다. 안정적인 플랫폼이 개발되면 전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중요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백신 플랫폼에 집어넣어 인체에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은 이미 유전자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이 발달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 전통적인 백신은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는 물질을 계속 배양하는 등 오랜 시간과 단계가 걸리지만, 백신 플랫폼이 개발되면 실험실에서 인공적인 조합을 통해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

◇‘범용 백신’으로, 한 번에 해결 가능

플랫폼 기술로 개발된 백신에도 한계는 있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때문이다. 기존 백신보다는 개발이 빠르지만, 임상시험을 거쳐야 해 돌연변이가 나올 때마다 맞춤형으로 대처하기는 힘들다. 특히 RNA 바이러스인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가 빠르다. 백신을 만들 때 이용한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변이가 일어나게 되면, 백신이 무력화된다. 실제로 남아공발 변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는 백신 효과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대비해 최근에는 코로나19 뿐 아니라 사스, 메르스 등 모든 코로나바이러스에 사용할 수 있는 범용 백신을 제작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변이가 빠른 스파이크 단백질 외에 변화가 없는 공통 단백질을 찾아 플랫폼 기술을 이용해 백신을 만들겠다는 것. 이미 영국 암 백신 전문 생명공학기업 스캔셀과 미국 VBI 등은 올해 안으로 초기 임상시험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정재훈 교수는 “다양한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통되는 단백질을 찾는 연구 외에도 스파이크 단백질 변이 유전체를 한꺼번에 섞어 만드는 다가 백신도 연구되고 있다”며 “코로나 외에도 인플루엔자 등 앞으로 나오는 모든 바이러스의 변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백신 기술이 다음 전염병 대비하고 있다 봐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질병 X가 계속해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잘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정재훈 교수는 “백신 기술이 굉장히 발달했다”며 “어떤 바이러스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대응이 빠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남재환 교수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우리에게 닥칠 다음 감염병 위기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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