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의료기관엔 ‘구급차’가 안 온다?···'이상한 119법 시행령'

위급 환자가 부르는 ‘구급차’ 의료기관 옆 길거리서 대기, 환자불만 폭증서울시의사회

언론사

입력 : 2021.07.08 16:02

출처:의사신문
출처:의사신문

#만성질환을 가진 A씨는 평소와 달리 쓰러질 것 같은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머리가 흔들리는 느낌까지 났다. 어지러움이 심해져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에서 A씨는 아내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평소 다니던 의원에 도착했다.

의사 B씨는 A씨에게 서둘러 '뇌졸중' 진단을 한 뒤 119구급대로 전화를 걸었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응급상황에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대학병원으로 옮겨 정밀 검사를 한 뒤 정확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19구급대원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출동할 수 없습니다"였다.

B씨가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119 출동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A씨가 직접 119에 구급차 출동 요청을 한 뒤에야 겨우 구급차가 출동했다. 의사 B씨는 A씨와 함께 병원 밖 도로까지 나가 구급차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고, A씨는 간신히 대형병원에 이송될 수 있었다.

◆ 병원 간 이송 거절···이상한 119법 시행령에 환자 불만 '폭증'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현행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이하 119법) 시행령 때문이다.

119법은 소방청장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위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구조·구급대를 출동시키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령인 119법 시행령 제20조 2항은 구급대원이 비응급환자인 경우에는 구급출동 요청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면서, '병원 간 이송 또는 자택으로의 이송 요청자'를 구급출동 요청 거절 사유 중 하나로 정해놨다.

다만 이 때 구급대원은 구급대상자의 병력·증상과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구급대상자의 응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의사가 동승한 응급환자의 병원 간 이송'은 구급출동 요청 거절 사유에서 제외된다.

결국 이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가 동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19구급대의 자의적인 응급 여부 판단에 따라 병원 간 이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옮기기 위해 의사가 119구급차를 요청하더라도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결국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대신 119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다.

응급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산부인과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산부인과 의원 원장 C씨는 "자궁 내 혈관이 터져 피를 수돗물처럼 쏟아내는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119구급차 요청을 거부당했다"며 "이 사건 이후로 분만은 하지 않게 됐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구급차를 보유·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응급환자 발생 시 119구급차 출동을 요구하지만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의 경우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분만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 간 이송을 위한 구급차 출동 요청이 왜 거부돼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C씨의 주장이다.

내과 의원 원장 D씨도 현행 119법 시행령에 대한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D씨는 "추위 속에서, 비를 맞으면서 환자들이 의료기관 밖에 나가 구급차가 오길 기다리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구급차를 갖추지 않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환자의 응급 여부를 판단해 구급차 출동을 요청하는데, 거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당장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다른 의사 E씨는 "현행 119법과 시행령 규정 때문에 구급대원들도 난감해 하다가 환자나 보호자가 119에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살짝 귀띔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환자의 상태가 중한데 의원 대기실에서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주의 깊게 환자를 관찰해야 후유증도 막고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느냐"며 "의사들의 이기주의적인 요구가 아니라,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책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환자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의사가 구급차에 동승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이는 1차 의료기관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내과 의원 원장 F씨는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통상 의사 1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응급환자 이외에도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며 "응급 이송환자로 인해 의원을 비운다면, 그 사이 발생하는 응급환자는 누가 돌보냐"고 꼬집었다. 그는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의사들은 구급차에 동승한다"며 "119구급차가 의원에 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했다.

의료계는 119법 및 시행령과 관련해 소방청에 법령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는 상태다. 이에 의료기관은 물론, 환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 의사 비동승 이송동의 받으면 '이송 가능'···애매모호한 신문고 답변

이런 가운데 서울시의사회가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서울시의사회는 서울시의회 김인호 의장을 만나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국민신문고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질의서를 제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우선 지난달 국민신문고와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법령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서울시의사회는 119법 시행령 제20조 2항 7호 단서인 '의사가 동승한 응급환자의 병원 간 이송은 제외한다'는 내용 중 '병원 간 이송'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병원급 의료기관으로의 이송'은 제외되는지 질의했다.

응급환자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때에는 의사가 동승하지 않더라도 119구급대가 출동할 수 있다고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게 서울시의사회의 주장이다.

이에 국민신문고는 "119 구급출동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출동 대상)에 의료기관(의원급 의료기관, 조산원, 병원급 의료기관, 종합병원)이 배제되지 않으며, 병원 간 이송에서 의사가 동승한 환자의 경우에는 응급환자로 판단해 반드시 이송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동승자에 따른 진료 중단 등 의사 동승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응급 상황 및 환자(보호자)의 '의사 비동승 이송동의(요청)' 등을 고려해 이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119구급출동 요청 대상에 의료기관이 배제되지 않는다', '응급상황 및 환자의 의사 비동승 이송동의 등을 고려해 이송할 수 있다'는 답을 얻은 것"이라며 "서울시의사회의 노력으로 작게나마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 서울시의사회, 서울시의회 조례 변경 추진···법제처 통해 '법령 개정'까지 고려

서울시의사회는 국민신문고 유권해석을 시작으로 관련 제도가 서울시의회 조례 개정을 통해 개선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박명하 회장은 "서울시의회 김인호 의장과 법제처를 방문해 '환자의 안전에 불합리한 법령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김 의장은 물론 법제처에서도 의료계의 의견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행령(대통령령)에 규정된 내용이다보니 법제처에서 소방청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에 의견을 올려 법령이 개정되는 과정"이라며 "'법제처가 행안부에 법령 개정을 권고하면 좀 더 주의깊게 보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서울시의사회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법령 개정을 앞두고 신문고와 권익위에 질의서를 보냈고, 서울시의회 조례도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국회를 통해 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신문 홍미현 기자 mi97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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