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작은 종이에 담기는 간절함…
그 기도는 누군가에게 꼭 전달됩니다
VOL.478 (화·수·목·금 발행)
2024-08-21

최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답답한 병원에서 치료 받는 중이시거나, 환자를 보호하느라 애쓰시는 보호자들의 힐링을 위해 최근 ‘휴가’를 주제로 미술치료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행복했던 휴가의 장면의 떠올려보기도 하고, 회복 후 방문하고 싶은 휴가 장소가 있는지, 누구와 함께 하는 휴가가 행복할 것 같은지 등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한 참여자는 작은 도화지에 바닷가를 그리고, 젊은 시절의 자신과 남편과 어린 아들을 그리고 싶다며 치료사인 저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바다는 본인이 그릴 테니 가족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리는 걸 좀 도와달라고요. 민첩하게 재료를 선택하시고 그릴 것을 생각하시더니 본인이 그릴 것과 도움을 청해야하는 것을 딱 구분해서 말씀하시는 것에서, 곧 70세라고 하시는 참여자분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것인지 매우 분주한 듯 작업을 해 나가는 모습이 뭔가 바쁜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혹시 치료 스케줄이 있는 것이라면 먼저 다녀오시는 것은 어떠세요?”라고 물었더니 참여자 분은 옆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매우 작은 목소리로 “제가 환자처럼 보이겠지만 보호자예요. 아들이 많이 아파서 지금 여기 와 있는 건데, 아들이 걱정돼서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시선을 도화지에 두고 손을 계속 움직이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셨습니다. 아들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상태이고 아들의 첫아들 그러니까 첫 손주가 이제 막 백일이 돼서 며느리는 아들 곁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며칠이라도 아들 옆에서 도와주려고 이렇게 병원에 와있는 거라고요. 미술치료라는 게 있다며 아들이 가보라고 해서 이렇게 왔는데 ‘여름휴가’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정말 오래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속초에서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참여자분은 한참 고민하시더니 그림 속에 예전 모습이 아닌 현재 가족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고맙고 고마운 우리 며느리, 무럭무럭 잘 자라는 우리 손자, 아프지만 곧 건강해질 아들, 그리고 늙어가지만 아직은 도움이 되는 나”라며 그림 속에 자리를 잡으셨지만, 남편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며 주저하셨습니다. 남편 분은 아들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남편이 아픈 아들을 좀 돌봐주고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목이 잠기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림 속에 빛나는 별을 하나 그리자고 했습니다. 반짝이는 별 하나가 남편 분이고, 그 별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요. 정성스럽게 별을 그리고 난 뒤 한참동안 그 별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보 내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아이한테 아빠 자리를 채우는 건 어렵더라고요. 그러니 우리 아들이 아이에게 충분히 아빠 노릇할 수 있게 아프지 않게 하늘에서 당신이 지켜주세요.”


남편을 향한 그리움, 아들을 향한 간절함이 담긴 그림이 별이 하나 떠있는 바닷가의 풍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림 한 장에는 30년의 넘는 시간이 담깁니다. 아주 오래전 자신과 남편 사이에 어린 아들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오늘은 며느리, 손자, 당시의 남편보다 나이가 많아진 아들 그리고 늙은 어미가 앉아있습니다.


여러분도 작은 종이에라도 간절함을 담아보세요. 그 간절함은 간절한 기도로 연결될 겁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분명 누군가가 듣고 있을 거예요.


/김태은 드림(일산차병원 암 통합 힐링센터 교수)
암에 걸리고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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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랑과 함께하면 마음의 평안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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