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폐암을 치료받고 이제는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희정(50·경기도 파주시)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폐에 있던 암이 뇌로 전이된 상태였는데, 씩씩하게 암과 맞섰습니다. 암을 극복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자양분 삼아, 현재는 한국폐암환우회 이사로서 암 환자들에게 큰 힘이 돼주고 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국립암센터 종양내과 안병철 교수도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두 달간 멎지 않던 기침, 폐암의 증상
이희정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23년 7월입니다. 이씨는 마른 잔기침으로 두 달간 고생했습니다. 동네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해도 기침이 줄지 않았지만, 병원 갈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웠던 이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일상에서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기침이 잦고 두통이 심해져 동네병원에 다시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국립암센터 종양내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조직검사 결과, 폐암 4기였습니다. 폐 우중엽에 5cm 크기의 종양이 있었고 0.9cm 크기의 종양이 뇌로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이씨는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암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암이라는 큰 쓰나미가 인생을 다 삼켜버린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불과 6개월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는 “건강하다”는 소견을 들었던지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주치의인 안병철 교수는 당황하는 이씨를 잘 이끌어주었습니다. “폐암은 불치병이 아닌 나을 수 있는 병이니,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는 안 교수의 말에 용기를 얻어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 만에 암세포 크기 80% 줄어
폐암 진단을 받은 지 1주일 뒤인 2023년 7월, 이희정씨는 표적 치료제인 타그리소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타그리소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RF) 변이 비소세포폐암에게 사용되는 표적 치료제입니다. 폐암 중 가장 흔한 것은 비소세포폐암으로, 전체 폐암의 80~90%를 차지합니다. 이 가운데 40% 정도는 EGFR 돌연변이를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성공적이었습니다. 타그리소를 복용한 지 6개월 만에 암세포는 처음 진단 당시의 크기보다 약 80%가 줄었습니다. 뇌전이도 사라졌습니다. 항암제로 인해 피부 발진 같은 부작용이 생겼지만,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아 이겨냈습니다. 폐렴이나 신부전 같은 심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잘 챙겨 먹었습니다. 덕분에 이씨는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안 교수는 “돌연변이 유전자만 표적해 치료하는 표적 치료제는 일반 항암제보다 치료 반응도 높고 부작용도 적다”며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타그리소로 치료를 이어갈 계획이다”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이씨는 타그리소를 매일 한 알씩 복용하고 있습니다.
두려움 극복하며 마음 다스린 비결
이희정씨가 폐암 투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두려움이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신체·정신적으로 생기는 작은 변화들이 두려움을 키웠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이씨의 마음을 다잡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한국폐암환우회’였습니다. 폐암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던 이씨는 폐암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받고자 폐암 진단을 받은 직후 한국폐암환우회에 가입했습니다. 이씨는 폐암을 겪었던 선배 환자와 소통하며 치료 과정에서 겪는 경험들을 듣고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폐암환우회 전 회장이 이씨에게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힘들거나 두려울 때마다 고민을 털어놓으라”는 식의 진심 어린 조언을 던졌고, 덕분에 이씨는 회복에 더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난 뒤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는 말처럼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암에 대한 것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암을 진단받고 감정기복이 심해졌던 이희정씨는 마음 힐링이 되는 다양한 활동을 직접 찾으며 실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평온하게 바라보는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집 주변 공원을 천천히 거닐며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들이마시면 마음이 안정됐습니다. 집에서는 신선하고 덜 가공된 식재료로 요리해 먹는 게 취미가 됐습니다.
“저선량 흉부 CT 검사, 꼭 필요”
‘폐암의 원인은 담배’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담배가 폐암을 유발하는 건 맞지만 폐암이 모두 담배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닙니다. 이희정씨 역시 담배를 피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폐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비흡연자도 폐암에 걸릴 수 있으며, 저선량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통해서 폐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더라도 폐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가 덜 힘들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비흡연자도 폐암 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선량 흉부 CT를 통해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선량 흉부 CT를 통해 폐암을 조기에 발견한 환자의 20년 생존율이 80%에 달했다는 미국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현재는 54~74세 남녀 중 30년갑(30년 동안 하루 1갑) 이상 흡연력을 가진 사람만이 폐암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저선량 흉부 CT를 무료로 받을 수 있지만, 폐암 검진사업이 효과를 보고 있는 만큼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여성 폐암은 물론 조기 검진을 촉구하는 다양한 인식 개선도 필요합니다.
<이희정씨>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암을 계기로 마음가짐과 생활습관이 달라지다 보니, 이전보다 삶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일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만 합니다. 개인적인 삶과 일의 균형을 잘 맞추려고 합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밥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암 환자로서는 한국폐암환우회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요. 암 진단 직후 가입한 한국폐암환우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감사하게 올해 이사로 선출돼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종양이 남아있긴 하지만, 폐암을 겪고 있는 선배로서 다른 환우에게 위로와 용기의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폐암 환우들의 고민과 궁금한 점에 성실히 답변해주며 멘토링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 급여 등재, 암 환자 인식 개선, 다양한 강좌 등에 대해 이사로서 선한 영향력을 선사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암 진단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사실 암 진단 이전에도 긍정적인 편에 속했습니다. 다만, ‘나’ 자신을 생각하는 관념은 암 진단 후 더 확고해졌습니다. 제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해야 하는 일은 무조건 마무리해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그런 마음가짐을 고쳤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우선시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됐고, 더 행복한 인생이 됐습니다.”
-투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암으로 면역력이 저하되고 심신도 지치다 보니, 전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쉽게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퇴근 후에는 모임도 나가고 열심히 활동한 사람이었지만, 어느새 집과 회사만 반복하는 삶이 됐습니다. 그래도 부정적인 마음이 생길 때마다 옆에서 지지해 주는 가족과 안병철 교수님 덕분에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이 없어 잘 먹고 잘 잘 수 있다는 겁니다. 저를 위해 힘 써주시는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잘 먹고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체력도 마음도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암 극복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신 게 있다면?
“암 치료를 받으면서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잘 먹어야 체력이 올라가고, 건강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가공식품과 고기 위주로 먹는 편식 습관을 고쳤습니다. 자연에서 얻는 여러 종류의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먹습니다. 처방받은 용량의 약을 잘 복용하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식단을 관리한 덕분인지 정말 체력이 좋아졌고, 정신까지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 순간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한마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이 먼저 평안해져야 모든 일이 잘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두렵고 힘들 때 가족, 의사, 다른 환우들에게 털어놓으세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안병철 국립암센터 종양내과 교수>
-현재 이희정씨의 정확한 건강 상태를 알려주세요.
“페 속 종양의 크기는 0.5cm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2023년 6월에 비교하면 90%가 사라진 상황으로, 치료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항암제를 매일 한 알씩 복용하고 계시며 ‘부분 관해’ 상태입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병원에 오셔서 검사받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시기만 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종양은 있지만 치료를 계속 받으면서 종양의 크기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남들만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폐암 4기에서 관해까지 도달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암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모범생’입니다. 보통 암 세포 크기가 줄어들면 하루 이틀 정도 항암제를 복용하지 않는 등 안일한 생각을 갖게 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희정씨는 처방받은 복약 방법을 철저히 지키고 계십니다. 음식도 영양 균형을 맞춰 잘 챙겨 드시고 운동을 꾸준히 하시면서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셨습니다. 또한 ‘암 완치’라는 목표를 향해 의료진과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의 역할도 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암에 대한 정보도 잘 알고 계시고 약제에 대한 거부감도 없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의료진을 믿고 적극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신 게 치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폐암 조기 검진이 중요한 이유는?
“폐암을 1~2기에 빨리 발견해 수술하면 생존율이 90%에 달합니다. 대부분 폐암 환자는 증상이 없는데요. 증상이 생겼다면 이미 3~4기로,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선량 흉부 CT를 통한 조기 검진을 해서 폐암을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최근 여성, 비흡연자 폐암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로, 조기 검진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장기간 흡연자가 아니라도, 간접흡연에 노출됐거나 직계 가족 중 폐암 가족력이 있다면 2년에 한 번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암에 걸렸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폐암 4기는 불치병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이는 다 옛말입니다. 폐암의 치료 성적과 예후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항암 효과는 높아지고 부작용은 줄어든 면역 치료제, 표적 치료제, 항체-약물 접합체 등의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의료진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노력하다 보면 완치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