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죽음>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
VOL.436 (화·수·목·금 발행)
2024-06-05

제가 재직했던 병원의 내시경센터 간호사가 한 번은 자신이 2015년 1월에 겪은 일이라며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이웃집 언니가 있었는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종종 전화 연락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그 언니가 나타나서는 “잘 지내?”라고 묻더라는 겁니다. 다음 날 언니에게 전화로 안부 문자를 넣었더니, 언니의 남편이 대신해서 “몇 주일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나 오늘이 49재인데,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갔나보다”며 답을 보냈다고 합니다. 간호사는 그 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으니 콤플렉스가 꿈으로 투사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 소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을 급성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어머니 한 분은 자신과 가족들의 경험을 공유해주었습니다. 아들은 생전에 원두커피를 좋아했는데 죽은 뒤 몇 달 지난 어느 날 아들 방에서 진한 원두커피 향이 났다고 합니다. 커피 향이 나는 시간은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5시까지였는데, 야심한 그 시각에 동네 어디에서도 커피를 볶거나 끓이는 이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간 같은 시간대에 커피 향이 퍼졌고, 그 향은 남편과 다른 두 자녀도 똑같이 맡았다고 합니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Many lives, many masters)’의 저자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의 초심리학 대학원 강의를 수강하던 대학원생의 경험담도 있습니다. 아내가 임신 4개월 차에 접어들던 어느 날, 꿈에 전혀 모르는 한 여자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자신의 전생 이름, 대학원생 부부를 부모로 선택한 이유, 자신이 이번 생에서 풀어야 할 업(카르마),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하고 놀라워 잠에서 깬 직후에 아내에게 얘기했는데, 아내도 그 시각에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겁니다. 몇 개월 후 딸이 태어났음은 물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얘기하는 태몽의 경우 동식물 등 상징이 많이 나오는 데 비해, 이 사례는 태어날 당사자가 출현해 구체적인 내용을 말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이 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꿈을 꾼 사람의 콤플렉스가 투사된 것일까요? 죽음으로써 모든 게 소멸해 버린다면 과연 어떻게 위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2014년 11월 초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 ‘데스’ 2부작에서는 ‘사후세계가 존재하는가?’로 네 명의 세계적인 학자가 나와서 갑론을박을 벌입니다. 셸리 케이건은 미국 예일대 철학교수로 그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사후세계는 허구입니다.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죠”라고 얘기합니다. 또한 영국 플리머스대 심리학 교수인 수잔 블랙모어는 “사후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바보 같습니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영혼의 존재가 증명됐어야 합니다”라며 사후세계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으로 유학해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 재직했던 알퐁스 데켄 교수는 “죽음은 끝이 아닌, 천국으로 가는 문입니다”라며 자신의 견해를 밝힙니다. 영국의 정신과 전문의인 피터 펜윅 박사는 “사후세계는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연구하고 나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합니다.


셸리 케이건과 알퐁스 데켄 두 사람이 철학을 전공했고 다른 두 사람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이라는 유사한 분야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은 “사후세계는 없고 죽으면 끝이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 명은 “죽음은 절대로 끝이 아니며 사후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합니다. 특히 정신과 의사는 대부분의 의사들처럼 대학 때부터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 교육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부정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의사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연구해 본 결과 사후세계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하니 귀 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도덕 윤리가 성립하려면 사후생의 존재가 요청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인류에게 집단무의식의 개념을 알려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구스타브 융은 “사람은 사는 동안 사후생에 대해 이해하기까지, 또한 최소한의 개념을 가질 정도가 되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아주 결정적인 손실이다”라면서 죽음 이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거론하면 미신에 빠진 비과학적인 사람, 혹은 정신이 조금 이상해진 사람으로 백안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혹시 우울해지고 비관적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이죠. 철학자 릴리언 휘팅은 “존재의 절대적인 지속성을 깨닫는 순간 현재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잠시 불교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을 뿐,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과정, 대학원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현대 과학 교육을 꾸준하게 받아 왔고, 지난 30년간 국제 SCI 학술지에 30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게재했고, 지금은 여러 해외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을 심사해 게재 여부를 판정하는 국제 학술지 심사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가장 필요한 요건은 철저한 검증의 자세와 객관성입니다.

  

나이 50살을 바라보던 무렵,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제도권 종교들이 저마다의 교리 속에서 얘기해온 것이나 개인적 체험담에서 주관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싶었던 것도 오랫동안 견지한 과학자로서의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칼 구스타브 융은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믿지 않는다. 알고 있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죽음과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공부는 삶과 의식과 우주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켜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앎은 제가 수십 년 동안 받아온 현대 과학 교육이나 이제까지 견지하고 있던 과학자나 의사로서의 삶과 전혀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자로 살아오면서 나 자신의 삶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주고 더 풍요롭게 해주고 있어서 감사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해 알면 삶과 존재의 의미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정현채 드림(서울대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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