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내 마음에 짙은 봄 들어오도록
VOL.417 (화·수·목·금 발행)
2024-05-01

짧은 봄날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잘 지내고 계신가요? 매년 맞는 봄인데도 우리는 하얗게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에, 향긋한 라일락에, 또 발갛게 피어나는 철쭉에, 연둣빛 여린 새싹에 감탄을 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정말 예쁘다’하며 환하게 웃기도 하지요.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병원에 계신 분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봄날을 즐기고 계십니다. 산책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햇살 가득 낭만적인 봄날의 기운을 만끽합니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삶에 대한 감사를 나누는 계절입니다. 


폐암으로 고생하다가 최근 악화돼 여러 검사를 받은 70대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세 자식을 잘 키우고자 하는 의지로 제법 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분이십니다. 외래에서 뵐 때에는 참 세련되고 잘 웃으시던 분이었는데 입원 이후에는 표정과 말투가 급격히 변했습니다. 검사 결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환자분은 평소 관계가 좋았던 의료진이 다가가 안부를 물을라치면 눈을 꼭 감아서 어떤 소통도 하지 않겠다는 거절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환자분의 자녀 셋은 모두 해외에서 취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그래서 휴가 때면 해외 휴양지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는 국제적인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외래시간에 맞춰서는 항상 기사 분이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는데요. 환자분이 이전에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이 모든 사회적 성취와 경제적 성공이 지금 이분의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해보였습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 아래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자연은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었지만 환자분이 계신 그 병실은 여전이 냉기 가득한 겨울이었습니다. 환자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닫고 봄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셨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홀로 누워있는 고립된 환자가 다시 눈을 떠서 봄의 생기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환자분은 카톨릭 신앙을 갖고 계셨는데 홀로 병실에서 기도문을 조용히 따라 읊고 계신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저는 환자분이 평소 좋아하던 기도문을 출력하고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 형태로 기도문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가능하면 환자의 시선에 잘 닿고 햇살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걸 보고 환자분은 정말 오랜만에 웃으셨습니다. 기도문을 읽어보기도 하고 이불 위로 아름다운 햇살이 들어온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만날 때마다 창문에 붙이는 기도문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기도문을 만들어 붙여드릴 때의 ‘창밖의 풍경을 좀 바라보셨으면’ 했던 마음을 솔직히 말씀드리자 그분은 ‘아!’ 하면서 눈빛을 반짝이셨습니다. 정말로 본인이 몇 개월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집에 가서도 자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며 “창밖은 바라볼 생각도 못했네요”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조심히 일어나 창가 쪽으로 의자를 옮겨 앉아 저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풍경을 바라보며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 키우면서 계절의 아름다움은 신경도 못 쓰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저 매 끼니 애들 밥 굶기지 않을까, 하고 싶은 공부를 돈 없어서 못시키면 어떡하나만 걱정했지요.” 


또 창문을 열어 봄 내음을 맡고는 소녀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라일락이라는 문예반 클럽을 만들어서 시를 낭송했던 추억과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다음 외래 때에는 시화전에 참여했던 사진을 찾아서 저에게 꼭 보여주겠다는 기분 좋은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겨울 같았던 환자에게 봄이 찾아왔습니다. 환자분의 차가운 마음을 온기 가득한 봄이 찾아와 저절로 녹여주네요. 


환자분은 퇴원 이후 외래에 오실 때 정말로 여고시절 사진을 갖고 오셔서 저를 만나고 가셨습니다. 양 갈래 머리를 한 흑백 사진 속 소녀를 보여주며 “나이는 80을 바라보지만 마음은 이제 막 봄이 됐네요” 하셨습니다. 


봄날은 짧습니다. 탄성을 자아내는 봄꽃도 짧은 시간만 우리 곁에 있다가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쉬워하며 더 귀하게 그 꽃들을 바라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 짙습니다. 모든 자연이 깨어났고 그 생명력이 가득한 봄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봄이 한가득 들어찰 수 있게 해주세요. 


햇살 가득한 봄날의 온기가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에 오래 남아 있기를 기원합니다. 


/김태은 드림(일산차병원 암 통합 힐링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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