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죽음>
근사체험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VOL.413 (화·수·목·금 발행)
2024-04-24

몇 달 전 50대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가 말기 폐암으로 항암화학요법을 받아 오다가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어 퇴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너무나 커서 옆에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저는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 근사체험, 삶의 종말체험, 죽음 이후에 관한 칼럼 및 오디오 파일 등을 소개해줬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은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누워서 들을 수는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디오 파일을 추천했습니다. 지인은 열흘 뒤 다시 연락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전해준 오디오 파일을 친구와 가족들이 반복해 들으며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많이 덜어내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 근사체험이 체험자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알 수 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2001년도 ‘란셋’ 학술지에 실린 연구입니다.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후 근사체험을 했다고 얘기한 23명과, 다시 살아났으나 근사체험은 하지 않았다고 얘기한 15명을 8년이란 긴 기간에 걸쳐 조사하고 비교했습니다. 


연구 결과, 근사체험 무경험자에 비해 근사체험 경험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수준이 높아졌고 인생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며 영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사후 생에 대한 믿음과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하루에 한 번 자신의 항문으로 배변할 수 있는 것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지만, 근사체험자들은 바로 이런 일상적인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증가했습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체험이 8년 뒤까지도 큰 영향을 미쳐서 체험자들의 삶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이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잠깐 동안의 꿈이나 환각이나 착각의 경험으로는 삶이 거의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의 책 ‘다시 산다는 것’에 소개된 한 사례의 주인공은 열 살 때 근사체험을 했는데, 이후로는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누군가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한 적도 있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난 일생동안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누군가 총을 내 머리에 갖다 댄 적도 있었는데 별로 두렵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들이 정말 나를 죽여도 난 다른 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사람들은 정말 뭘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에 혼자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또 다른 근사체험자인 아니타 무르자니는 그녀의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에서 “나는 더 이상 죽음도 다른 이들이 보는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애도하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물론 가까운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나면 슬펐다. 그들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죽음을 애도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다른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그들이 행복하리라는 것도 알았으니까”라며 자신의 변화된 죽음관을 고백합니다.


케네스 링 교수는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을 가르쳤습니다.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본인들이 직접 체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근사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근사체험은 이를 알게 된 사람을 감염시키는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까지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에서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합니다.


2014년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내과학회가 개최된 적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수천 명의 내과의사가 참석했는데요. 이 학회를 준비하기 위해 그보다 2년 전인 2012년 칠레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던 대한내과학회의 한 임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사례를 소개합니다.


당시 한국 의사들을 안내했던 칠레의 현지 가이드는 어릴 때 칠레로 이민 온 한국인이었는데, 28세 때 오토바이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당해 의식 불명으로 오랫동안 병실 침상에 누워 있으며 근사체험을 경험합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그는 체외이탈을 해 육체를 빠져나와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보니 병원 구석구석에 익숙해져서 한 달 후 퇴원할 무렵에는 병원에 처음 오는 사람에게 병원 곳곳을 안내해 줄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그는 근사체험 후 자신의 변화된 인생관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다시 깨어난 이후로 제 인생은 180도 바뀌었고 햇살, 잔디, 아침이슬 같이 전에는 하찮게 여긴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만 보입니다. 사람들을 관찰하면 속마음에 감추어진 진실이 보일 때도 있고요. 예민해졌다기보다는 이해하는 마음이 더 넓어졌습니다. 가끔씩은 자연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체험은 결코 잊지 못할 일이지만 함부로 주위에 말했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편이었는데, 고국에서 의사선생님들이 오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자신의 체험에 대한 의학적 설명을 듣고 싶어 얘기한다고 했습니다. 이 체험담을 전해 듣고서 저는 이 분이 경험한 사례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천 내지 수만 명의 사람들이 체험한 근사체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격려하기 위해 이에 관련한 다수의 책들을 칠레로 보내 주었지요.


네덜란드 다기관 연구에서 조사한 근사체험 후 삶의 변화 중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증가하고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커지고 예지력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이 생겨나기도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칠레의 이 교포 역시 근사체험 후 그러한 삶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삶의 중요한 변화일 것입니다. 위 연구에서는 이러한 삶의 변화가 8년까지도 유지됐다고 했는데 이 분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도 오랜 기간 유지되리라 예상됩니다.


말기암 환자를 비롯해 임종이 임박한 사람이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이 소멸한다는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근사체험 현상이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게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근사체험은 체험자의 뇌가 헷갈린 것도 꿈도 환상도 아닙니다. 짧은 순간 동안의 체험이지만 체험자의 삶에 지속적으로 긍정적이고 심대하며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키는 ‘근사한 체험’, 즉 ‘Nice death experience’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제학과 명예교수 한 분은 이와 같은 이유로 임사체험이라는 용어보다 근사체험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정현채 드림(서울대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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