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은 나와의 싸움…
끝없이 공부하고 전략을 세우세요”
<아미랑 인터뷰>
VOL.397 (화·수·목·금 발행)
2024-03-26

암에 걸리면 모든 게 ‘처음’입니다. 암 진단부터 치료를 받으며 겪는 변화, 극복 후에 생기는 불안감까지 생소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주던 약사에게도 암은 처음이었고, 생경했습니다. 유방암 2기를 극복한 김훈하 약사(53·서울시 노원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암을 극복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자양분 삼아, 암 환자들에게 큰 힘이 돼주고 있습니다.


유방암 2기를 극복한 김훈하 약사./사진=김지아 기자(김훈하 약사)


예상 못한 암, 극심한 감정변화

김훈하 약사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낀 건 2018년 3월입니다. 생리 기간도 아닌데 왼쪽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딱딱한 멍울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증상이 없었고, 병원 갈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워 ‘설마 암이겠어’라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넘겼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른 잔기침이 시작되더니 한 달여를 내리 고생했습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도 기침이 줄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보니, 림프절 전이가 동반된 유방암 2기였습니다. 2.5cm, 2.9cm 크기의 종양 두 개가 왼쪽 가슴에 퍼져있었습니다.


암 진단을 받으니 온 몸이 떨렸습니다. 감기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 체질이었던 데다가, 가족 중 아무도 암을 겪지 않았습니다. 암이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급격한 감정변화를 겪었습니다. 놀라고 무섭고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현재 삶이 자신을 내리치는 듯했습니다. ‘세 아이와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남았습니다.


2018년 4월부터 항암 치료를 6개월 동안 받았습니다. 그 후, 왼쪽 유방을 전부 잘라내는 전절제술, 전이를 제거하는 림프절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보형물 삽입 전 확장기를 넣는 수술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재발 방지 목적으로 수술 후 9월부터 10월까지는 방사선 치료를 28회 받았습니다.


두려움 이기게 해준 건 ‘도전’

김훈하 약사가 유방암 투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두려움이었습니다. 암 치료를 받으면서 몸에 생기는 작은 변화들과 부작용이 두려움을 키웠습니다. 암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질수록 압박감도 심해졌다고 합니다.


이런 불안정한 심리를 다독인 것은 공부였습니다. 항암 치료를 하면서 생기는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네 번째 항암 때부터 김 약사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1주일에 서너 권씩 암 관련 책들을 빌려 읽었습니다. 약학과 전공을 살려 논문도 읽으며 빠르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가 쌓이니 투병 전략의 방향이 보였다고 합니다. 항암 동지들 사이에서 ‘항암을 어떻게 하느냐’ ‘암 투병에 도움 되는 식이요법을 알려 달라’고 물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8년 12월에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블로그에는 식이요법, 생활습관, 부작용 극복법 등 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그러다가 ‘열방약국 유방암 상담소’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유방암 극복 방법, 최신 치료 동향, 치료 받으며 겪은 시행착오, 힘들 때 도움이 되는 내용 등을 담았습니다. 김 약사는 “표준 치료가 끝난 뒤 건강을 관리하는 건 온전히 환자의 몫”이라며 “많은 환자들이 그 긴 여정에서 시행착오를 최소로만 겪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냈다”고 말했습니다.


암 투병은 ‘자신과의 싸움’

김훈하 약사는 치료 기간 동안 어떤 어려움을 겪었던 걸까요? 항암 치료 후 구내염, 두통, 저체온증이 심했다고 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손발과 복부가 너무 차갑고, 체온이 36도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 약사의 세 아이들은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남편도 중국에 함께 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학업을 중단할 수가 없어서 남편과 아이들은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해외에 있는 가족을 대신해 삼시세끼 따뜻한 국과 반찬을 만들어준 건 친정어머니였습니다.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으로 힘들어하던 남편, 엄마 걱정만 하는 아이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나를 위해 매일 밥을 차리는 엄마를 보며 김훈하 약사는 생각했습니다. ‘암이 내 가족까지 힘들게 하게 둘 수는 없다. 스스로 이겨내자!’


그때부터 ‘암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좋은 생각하고, 열심히 챙겨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였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었습니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따뜻한 현미차와 생강 홍차도 수시로 마셨습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공원이나 둘레길을 거닐었습니다. 암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족을 떠올리며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7개월 만인 2019년 4월에 약국으로 복직했습니다. 17년 넘게 지켜온 약국을 암 때문에 그만두는 건 너무 허무하다 느꼈다고 합니다. 김훈하 약사는 “나는 암을 극복한 경험을 가진 약사”라며 “사람들의 건강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었고,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책을 낸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3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정기적인 추적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재발이나 전이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김훈하 약사>

-어떻게 지내세요?

“제 인생 통틀어 제일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암을 계기로 마음가짐과 생활습관이 달라지다 보니, 이전보다 삶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약국은 물론, 작은 상담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을 손님들의 건강 고민을 덜어주고 특히 유방암 환우들의 고충과 궁금증을 해소해드리는 데 열심입니다. 퇴근하면 하반기 출시를 앞둔 책 작업에 몰두합니다. 이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이전 책을 읽어보니 ‘채소 섭취’를 강조하시던데요.

“암 진단 전에는 가공식품을 즐겨 먹었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제 일상이 독과 같았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암을 진단 받은 이후 암에 대해 공부할수록 건강한 식단, 특히 채소 섭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매일 여러 종류의 채소를 갈아서 천천히 씹어 먹습니다. 사과,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오이, 파프리카, 케일 등을 주로 섭취합니다. 5년 넘게 10종류 이상의 채소를 매일매일 먹다 보니, 체력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피부도 맑아졌는데, 몸속의 장기들 역시 눈에 보이진 않아도 건강하고 튼튼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암 치료 이후 특별히 신경 쓰신 게 있다면?

“항암, 방사선 치료가 끝났다고 암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몸이 암세포가 좋아하는 환경이 되면 암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래서 설탕이나 가공식품 같이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은 제 식단에서 과감하게 없앴습니다. 건강하게 먹기! 실천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중요한 수칙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응원의 한 마디.

“여러분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역시도 암을 진단 받았을 땐 마음이 매우 불안했고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짧게 끝내셔야 합니다. 소중한 여러분의 시간을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데 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길수록 주치의를 믿고, 치료를 잘 따르고, 잘 먹어서 암을 이겨낼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세요. 그와 더불어,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갖는 것도 암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뭐든 시작해보세요!”


/김서희 기자 ksh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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