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죽음>
죽어서 빛을 봤다는 근사체험,
과연 ‘뇌의 오류’로만 봐야 할까?
VOL.390 (화·수·목·금 발행)
2024-03-13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던 사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춘천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J씨는 추석 전날 승용차로 고향에 내려가던 중 대형트럭과 충돌해 응급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응급수술 도중 몸에서 분리돼 공중에 붕 뜬 채로 자신이 수술 받는 장면을 모두 지켜보게 됩니다. 회복되고 난 후 회진 온 의료진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더니 “참으로 이상한 분이다”라면서 믿지 못하는 표정을 보이더라는 겁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의학의 발달과 함께 1960년대부터 심장이 멎고 호흡이 중지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살려내는 심폐소생술이 점점 더 발전해, 인공호흡으로 공기를 기도에 불어넣고 두 손으로 흉부를 반복해서 압박하는 현재의 형태로 정립됐습니다. 이 시술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됐는데, 또 이들 중 대략 10~25%가 심장이 멎어 있던 동안의 경험인 근사체험을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근사체험 보고 사례는 점점 더 많아져서, 지금까지 보고된 것만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 건이 넘습니다. 


물질 위주의 과학이 발달하면서 개발된 심폐소생술로 인해, 주류 과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정신세계의 체험이 알려지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심폐소생술과 관련해 일어난 근사체험의 실제 사례 중 제가 직접 전해들은 사례를 소개합니다. 2012년 11월 필자가 한국 여의사회 초청으로 죽음학 강의를 하고 난 후, 여의사 한 분이 자신의 친구가 경험한 흥미로운 사례를 제보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마취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이라면서요. 그 의사는 유대인이 세운 큰 병원에서 주로 심장 수술의 마취를 담당했는데,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평소 동양인을 비하해서 이 한국인 마취과 의사도 늘 무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이 외과 의사의 심장이 멎는 응급사태가 발생했답니다.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포기하려고 했을 때, 이 한국인 마취과 의사가 자청해 심폐소생술을 조금 더 해보겠다고 나섰답니다. 평소에 자신을 늘 무시했지만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수술 실력이 뛰어난 의사라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거죠. 미국인 의료진은 멀뚱히 보고만 있는 가운데 이 한국인 의사는 비지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30분쯤 지났을 때 기적적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난 외과 의사가 나중에 얘기한 내용이 놀라웠습니다. 심장이 멎어 사망 판정을 받았던 이 의사는 심폐소생술 도중 체외이탈을 해 소생술 현장 공중에 붕 떠서 자신의 육체가 소생술을 받고 있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는 겁니다. 내려다보니까 자기와 친했던 미국인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거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반면 자신이 늘 무시하던 한국인 마취과 의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심폐소생술을 끝까지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회생한 후에는 한국인 마취과 의사가 자신을 살렸다고 감사해하며 이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 사례는 의사가 경험한 근사체험이어서 더욱 신뢰가 갑니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대학 때부터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 교육을 받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이러한 체험은 단순한 환각이나 꿈,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근사체험자들이 모두 똑같은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고,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보고됩니다. 이에 대해 근사체험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체험자에게 익숙한 문화가 반영되는 걸로 볼 때 근사체험을 뇌가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에 일부 동조하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좀 더 많은 자료를 연구하면서 그런 것을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근사체험의 요소 중 ‘빛과의 만남’이 있는데요. 체험자들은 이를 자신의 종교적 배경에 따라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신교 신자가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거나 불교 신자가 예수를 만났다고 보고하는 일은 없습니다. 각자의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을 조우하고, 종교가 없는 사람은 빛 그 자체와의 만남을 보고하지 날개 달린 천사를 만났다고 보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체험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더라도 빛 또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봤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일치했습니다.


비유하면 깊은 산골에서만 살아오던 세 사람에게 서울 구경을 잠깐 시켜주고 자기가 본 걸 얘기하라고 하면 말하는 내용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누구는 남산 타워를, 누구는 경복궁을, 또 다른 사람은 63빌딩이나 롯데타워를 얘기하겠죠. 그런데 이를 두고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저마다 다르니 이들이 서울에 다녀왔다는 걸 믿을 수 없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이 본 것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부터 얘기하기 마련이니까요.


신비가나 영매 또는 최면 퇴행을 통해서 전해지는 ‘죽음, 그 후’의 상태를 보면, 우리 모두가 수명을 다해 육신을 벗어나면 근사체험의 여러 요소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근사체험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영역이 확장되고 체험 내용이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생의 회고만 하더라도, 근사체험에서는 수십 년 살았던 이번 생만을 되돌아보지만, 우리가 죽어서 하게 되는 생의 회고에서는 바로 직전의 생뿐 아니라 전전생, 그리고 수백 년 전의 삶까지도 회고하면서 여러 경험을 통합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 수많은 환생을 거치며 조금씩 존재의 근원과 가까워지는 거라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사실인지는 우리 모두가 훗날 수명을 다해 육신을 벗어나는 시점에 직접 확인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살면서 굳이 자신의 전생을 알려고 할 일은 아닙니다. 


근사체험만을 알고 있으면 근사체험이 진실인지 의심하는 단계에 오래 머물게 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죽음, 그 후’에 대한 연구 결과로까지 탐구의 범위를 확장시킨다면, 근사체험의 진정성 여부는 쉽게 확인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건물 1층의 맞은편에 담장이 있고 그 너머에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으면 1층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이 건물의 4층, 5층까지 올라가 보는 식입니다. 그 위로 올라가서 바라보면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탐구의 범위를 확장시켜보세요.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정현채 드림(서울대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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