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용서를 구하면 감사와 사랑이 따라옵니다
VOL.372 (화·수·목·금 발행)
2024-02-07

암 환자에게 통증 조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은 통증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환자분을 소개하려 합니다.


폐암으로 치료를 받던 71세의 남자 환자입니다. 열이 날 때면 폭포 풍경을 병실에 붙여 달라 하시고, 항암 부작용으로 냄새에 민감해질 때에는 새콤한 향이 떠오르는 레몬 사진을 출력해달라고 제게 부탁하실 정도로 민감하고 섬세한 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자신이 연주한 색소폰 연주곡을 들으셨고, 미술치료사인 저와는 전 세계 미술관의 유명한 명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실 정도로 감성적이었습니다.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그 분은 항상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계셨고, 힘 있게 웃으셨고, 때로는 제가 퇴근하는 시간에 복도로 걸어 나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밤에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같은 병실 환자들의 숙면을 방해할 정도의 큰 소리로 끙끙 앓는다 하셨습니다. 통증 때문입니다. 진통제가 들어가도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것이 이 분 주치의와 간호사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주치의 선생님은 미술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이 분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통증이 매우 잘 조절되는 게 신기하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통증을 느끼는 요인이 심리적인 부분에 있다고 판단돼 그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집중한 것은 밤 시간에 환자의 옆을 지키는 보호자인 아내분과의 관계였습니다. 어느 날 따님이 병원을 방문해 환자인 아버지는 만나지 않고 엄마만을 휴게실에서 만나고 돌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환자의 통증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목소리 톤도 높아지고 호탕한 웃음을 지었지만, 보호자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말수도 줄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어색함에 몸도 다소 경직돼 보였습니다. 여느 가정에나 어떤 형태이든 갈등은 존재하기에,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환자분은 “집사람에게는 미안한 마음밖에 안 듭니다.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병든 몸을 맡기고 있는 처지가 죄스러울 뿐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보호자 분도 면담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남편이 가정에 소홀해졌고 늘 딸과 자신은 외로웠다는 겁니다. 아픈 남편이니 곁에 있긴 하지만 원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요. 항상 침착했던 아내분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보아 원망의 깊이가 상당한 듯 했습니다.


저는 환자분께 아내와 딸을 향한 마음을 표현해보자 제안했습니다. 환자분은 한숨을 길게 쉬시고는 “내가 경상도 사람인데,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게 멋쩍습니다”라며 주저했습니다. 저는 “아뇨.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은 나중입니다. 먼저 미안한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하셔야지요”라고 했습니다. 환자분은 큰 다짐을 하시고는 침대에 책상을 펴고 미안한 것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많은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와달라고까지 하신 겁니다. 미안한 것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내서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할 때,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감사와 깊은 애정이 함께 마음속에서 우러나옵니다.


용기를 낸 환자를 위해 저는 아내분이 젊은 시절 좋아하셨다던 노래를 찾아 틀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적었던 미안한 일들을 편지로 옮겨 환자분이 직접 읽도록 했습니다.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멋지게 녹음해, 아내에게 전했습니다. 음성 편지를 들으시고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고 “사과해줘서 고맙다”며 남편에게 수줍은 듯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부모님의 화해의 소식을 전해들은 따님도 마음을 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사과를 한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 작은 선물이라도 만들고 싶다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감사장을 만들기로 했고, 열심히 작업해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선물해드렸습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사인 롤로메이는 “가족은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마치 이 환자분의 가족이 딱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겠지요? 


명절을 앞두고 병원에 계신 가족을 찾아뵐 계획이라면, 그간 미안했던 마음을 말로, 글로 풀어서 표현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환자분은 자신의 옆을 지키는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들려주세요. 서로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은 꺼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영영 모릅니다. 입술을 열어서 꼭 표현하세요. 후회 없는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김태은 드림(일산차병원 암 통합 힐링센터 교수)
암에 걸리고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나아가, 암을 현명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아미랑과 함께하면 마음의 평안은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