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죽음>
‘좋은 죽음’을 위한 네 가지 준비
VOL.360 (화·수·목·금 발행)
2024-01-17

80대 후반의 지인으로부터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죽음이 두려운데, 내색은 못하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지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고령 분들이 이와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봤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마지막 삶을 보살폈고, 죽음이 일상사에 자연스럽게 포함돼 있었지요.

 

그러다가 과학이 발달하고 생명 연장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이 아닌 낯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죽음이 삶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치료의 실패나 의료의 패배로 보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응급 환자에 적용돼야 할 치료법이 임종이 며칠 남지 않은 말기 환자에게까지 적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져서, 이제는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편안하게 죽기가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주 고령의 나이에 여러 가지 질병이 겹쳐진 경우에는, 병들어 고통뿐인 육신을 벗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 텐데 말이죠.

 

의료 현장에서는 현세 집착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을수록 무리하게 수명을 연장하는 데에 매달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과연, 사람들이 수십 년간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가능한 한 고통을 덜 겪으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건강할 때부터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맞게 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성찰해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려면 평소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은 삶 전체가 죽음의 준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음 준비의 핵심은 지난 칼럼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이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죽음은 사라지는 것, 소멸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브 융은 그의 수제자였던 폰 프란츠의 입을 통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1970년대 중반부터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이 발전하면서, 심장과 호흡이 멎고 동공 반사가 사라진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생겼고,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이 죽어 있던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외 이탈을 해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는 것도 근사체험의 중요한 체험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반드시 뇌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현상이고, 현재 이러한 근사체험 사례들이 세계적으로 수천 건 이상 축적돼 있습니다. 근사체험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 근사체험은 ‘란셋(Lancet)’ 같은 저명한 의학학술지에도 연구 논문이 실릴 정도로 이제는 의학의 한 연구 분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죽음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어린이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정신과 의사입니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애벌레 모양인데 뒤집으면 날개가 달린 나비로 변하는 헝겊인형을 보여주면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애벌레를 에워싸고 있는 고치가 육체의 죽음을 상징한다면, 고치를 벗고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날아가는 것은 죽음 이후를 상징합니다. 그는 “인간의 육신은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불과해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고 일관되게 얘기했습니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이렇게 확고한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수많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며 목격하고 체험한 삶의 종말체험과 근사체험 사례들을 통해서입니다. 개인적인 추측이나 사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례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해서 얻게 된 결론인 것이죠. 그래서 신뢰가 갑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의 큰 위안을 얻게 됩니다. 죽음과 죽음 이후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가 옵니다. 재물이나 명예나 일의 성취와 같이 지상에만 머물렀던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생에서 의미 있게 살다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됩니다.

 

입학시험이나 입사시험, 결혼이나 기념일은 열심히 준비하면서, 몇 백 배는 더 중요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고, 본인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외면하고 회피하며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심지어 한가한 사람이나 비관적인 사람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법이라는 난감한 논리도 많이 듣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갖는 감정은 무관심과 부정, 외면 그리고 혐오로 요약됩니다. 젊고 건강할 때 유언장을 써 보기도 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놔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암이나 불치병 진단이라도 받게 되면 정작 주위에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십 년 간 열심히 삶을 살아왔으나 삶의 마무리는 전혀 하지 못한 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접합니다.

 

본인과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이 다 편안한 상태에서 홀가분하게 떠나는 건, 죽음이 임박했을 때 허둥지둥 준비한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죽음을 직시하고 자주 성찰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혼자만 갖고 있지 말고 가까운 사람들과 수시로 대화를 통해 공유하는 게 필요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죽음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돌봐줄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테니까요.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어느 완화의료 전문의는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제시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고맙다고 말하기.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기. 작별인사를 잘 남기기. 이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게 ‘선종’, 즉 좋은 죽음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선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정현채 드림(서울대의대 명예교수)
암에 걸리고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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