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어깨를 감싸는 따스함’
VOL.312 (화·수·목·금 발행)
2023-10-25

치료 때문에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있는 분들 계시지요? 몸이 아파서 우울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인지 몰라도 치료를 받는 과정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환자 한 분을 여러 번 만나다 보면 그분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됩니다. 미술치료 시간에는 개인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병원 의료진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도 환자분 개인의 삶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겠죠.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제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는 한 환자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 분은 30대 중반에 위암을 진단 받고 수술과 항암으로 잘 관리하던 중, 3년 뒤 재발돼 다시 병원에 입원하신 상태였습니다. 치료 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 남편 분은 얼굴에 안타까움이나 안도의 감정이 다 드러났는데, 환자분은 항상 무표정이었습니다. 인상이 침착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미술치료 첫날, 환자분은 저에게 ‘어디서 어떤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물었고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사람인지를 면접하는 듯 했습니다.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치고 환자분은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몸이 약했던 엄마, 행복하지 않았던 청소년기까지…. 제가 묻지 않아도 미술치료가 진행되는 날마다 환자분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시절의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대화중 알게 된 것은 이 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족공동체’라는 것이었습니다. 힘든 시절을 지나 만나게 된, 자신과는 너무 다르게 다정하고 따뜻한 남편. 난임을 어렵게 극복하고 얻은 세 딸. 힘든 투병 과정이지만 자신이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은 가정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다시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이 분에는 매우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가족이 자신의 암 때문에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습니다. 초등학생 딸은 서울 시댁에 머물고 있고, 아직 어린이집을 다니는 쌍둥이 두 딸은 지방 외가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환자가 가족에게 갖고 있는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분과 함께 자녀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했습니다. 링거를 계속 맞아 부은 손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열심히 그려서 ‘엄마 병실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초대 당일, 병실 복도에서 오랜만에 만난 자매들은 서로를 안아주며 반가움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제 소개를 하고 “엄마가 너희들을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하셨다” “엄마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여전히 너희를 최고로 사랑하신다” “엄마는 아주 용감하게 치료를 받는 멋진 분”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엄마를 만나자 힘껏 달려가 안아주었습니다.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함께 사진을 찍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기 전, 한 가지 미술작업을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의 실제 팔 길이로 만든 ‘안아주는 인형’을 만들자 했습니다. 떨어져 있어도 엄마를 꼭 안아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엄마, 주사가 무섭고 아플 때 이 인형이 안아줄 거야” “내가 보고 싶으면 내 팔이랑 똑같이 만든 이 인형을 꼭 안아” 아이들의 말을 들은 환자분은 꽃처럼 활짝 웃으셨습니다. 차갑고 침착하던 첫 날의 인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분들이 “복도 많지. 천사 같은 세 딸이 있으니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게 없겠네”라며 함께 기뻐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30대에 암이 재발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자신이 불쌍하기만 했는데, 주변에서는 ‘복이 많다’고 해주니 말입니다.


가족이 그리우시죠? 가족에게 돌아가고픈 마음에 치료가 더 힘드시지요? 지금 스스로를 한 번 토닥이며 안아주세요. ‘사랑하는 가족의 품이다’라고 생각하고 따뜻하게 안아보세요. 혼자 떨어져 치료 받고 있는 환자를 둔 가족이라면, 변함없이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해주세요. 가족이 꼭 끌어안고 있는 그림을 그려 전달하셔도 좋고, 작은 쿠션을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 그리울 때마다 안아볼 수 있도록 해주셔도 좋습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연결되는 온기와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는 기분 좋은 따스함.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태은 드림
암에 걸리고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나아가, 암을 현명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아미랑과 함께하면 마음의 평안은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