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내 인생의 쉼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게 됐죠”
<아미랑 인터뷰>
VOL.307 (화·수·목·금 발행)
2023-10-17

백혈병 중에서도 예후가 불량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기를 극복한 홍유진(41·서울시 동작구)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생존율 10%’의 암을 이겨내고 현재 10년째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암 투병기인 ‘웰컴 투 항암월드’를 펴내고 암 환자 협동조합인 ‘캔프’를 설립한 젊은 여성의 극복기, 아미랑에서 자세히 들려드립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기를 극복한 홍유진씨./사진=신지호 기자


좌절 딛고 치료에 전념

홍유진씨가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은 건 2013년 9월입니다. 왼쪽 배 아랫부분이 딱딱해지고 붓기 시작하며 일상에서 움직임이 힘들 정도로 숨이 찼습니다. 곧바로 직장 근처 병원에 내원해 혈액과 소변 검사를 받은 결과 “암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내원했습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기’로 헤모글로빈 수치가 5.4였습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암세포가 골수에서 발견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진행 속도에 따라 만성기, 가속기, 급성기로 나뉩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성인 백혈병의 25%를 차지하는 질환으로 30~50세에 주로 발병합니다. 2001년 표적 치료제인 글리벡이 개발되면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 5년 생존율은 60%에서 85%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홍씨처럼 급성기를 진단 받은 경우, 생존율이 10%로 매우 낮습니다.


진단 후 돌이켜보니 지난 1년 사이에 체중이 10kg나 빠지고 자주 토하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백혈병의 징후였던 겁니다. 당시 사회초년생으로 일은 물론 개인의 삶에서도 ‘브레이크’ 없이 하루를 36시간처럼 지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생존율 10%”라는 말을 들은 홍씨는 치료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이 들며 괴로웠습니다. 가족이 있어 견뎠습니다. 불안해하는 홍씨를 잘 토닥이고 이끌어주었습니다. 부모님과 오빠가 “너의 탓이 아니다. 절대 누구한테도 미안해하지 말라”며 끊임없이 격려했습니다. 덕분에 용기를 낸 홍씨는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총 5회의 항암 치료와 골수 이식을 받았습니다.


‘신을 감동시키자’는 결심

치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격리 병동에서 항암 치료를 이겨내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신조차 감동시킨 노력’을 이야기한 셰익스피어의 생각처럼 홍유진씨도 ‘신을 감동시켜보자’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열심히 먹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버티기 위해서였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일반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홍씨는 빵, 곰탕 등 보다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는 특식을 신청했습니다. 몇 배 비싼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먹어, 병동에서 밥을 가장 잘 먹는 환자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이런 음식이 좋다더라’ ‘암 환자는 채식만 해야 한다더라’ 등의 말을 했지만, 현혹되지 않고 평소 뭐든 열심히 먹었습니다. 밥을 잘 먹다 보니,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홍씨는 “생존율 10%인 암을 이겨낸 비결을 꼽으라면 단연 식사일 것”이라며 “잘 먹은 덕분에 8개월의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고 지금도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12월, 암 유전자 검사에서 음성인 관해 판성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이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치유의 힘’ 준 독서

홍유진씨는 항암 치료 중 폐렴, 두드러기 같은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구토와 탈모 같은 부작용은 그에 맞는 약을 처방 받아 이겨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습니다. 격리 병동에서 150일 동안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관해 상태가 안 돼 퇴원이 취소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의 지독한 악몽도 이어졌습니다.


불안정한 심리를 붙잡아준 것은 독서였습니다. 아우슈비츠처럼 힘든 일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비참한 상황을 살다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이 나이까지 살아온 것도 행운이라고 여겼습니다. 가족이 아닌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독서 치유의 힘은 ‘웰컴 투 항암월드’ 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학부 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홍씨는 암을 진단 받기 전에도 작가를 준비할 정도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는 게 꿈이었기에, 암을 극복한다면 반드시 책을 출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암 치료 중 만난 여러 의료진과 환우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홍유진씨는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거나 예정인 환자, 암 환우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 보탬이 되고자 책을 냈다”고 말합니다. 


‘제2의 삶’

홍유진씨는 진단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 전이 없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일에 몰두해 건강을 돌보지 않던 예전과 달리,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업무 강도가 높았던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암 경험자와 가족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인 ‘캔프’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캔프의 이사장으로서 보다 자유롭고 보람찬 환경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캔프는 ‘캔서 프리(암으로부터의 자유)’, ‘캔서 프렌즈(암을 통해 만난 친구들)’의 약자입니다. 홍씨를 비롯한 백혈병, 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을 겪은 30~70대 여덟 명이 참여해 만든 암 경험자와 가족들의 협동조합입니다. 매년 암 경험자와 가족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제도와 인식은 부족했습니다. 암 환자들의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캔프를 설립했습니다. 암 경험자의 심리, 치유를 도와주는 자조 모임은 많지만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모임과 단체는 비교적 적습니다. 여덟 명의 조합원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중랑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2023년 5월에 설립 신고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현재는 조합원이 60명으로 늘었을 정도로 암 경험자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홍유진씨를 만나 캔프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홍유진씨./사진=신지호 기자


-캔프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암 경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암 경험자들의 몸에 좋은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심신·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수익사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비전을 갖고 운영합니다. 캔프 공식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치약, 샴푸, 입욕제를 비롯해 현미과자, 오곡미숫가루, 현미쌀 등과 같이 암 경험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 먹거리와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아주 반응이 좋습니다. 웃음 치료 워크숍, 제주도 워크숍 같은 힐링·치유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2회 ‘우리 지구와 함께 한마당’ 축제에 참여해 캔프 조합원이 만든 먹거리와 양초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조합원 9명이 작가로 참여한 항암 소설집도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 2월에 개최될 ‘캔서 엑스포’ 준비에도 한창입니다.”


-캔프 협동조합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건가요?

“캔프는 암 환자는 물론 건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협동조합입니다. 네이버카페 ‘캔프협동조합’에 등록된 구글폼을 작성하시면 참가 신청이 완료됩니다. 평생 가입비 10만원이 있습니다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문을 두드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캔프 참여가 힘든 암 환자의 경우?

“체력, 위치 등 다양한 사유로 캔프 참여가 힘든 환자들도 계실 겁니다. 당장 활동이 힘든 경우라면, 잘 먹고 잘 쉬라고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운동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규칙적으로 걸으세요. 족욕, 반신욕을 통해 몸을 따뜻하게 관리하세요. 또한, 심리적으로 힘든 분들은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으세요. 굳이 캔프가 아니더라도, 암 환자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온·오프라인으로 존재합니다. 어디든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만큼만 무리 없이 참여해 심리적 치유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활동이 암 환자에게 중요한가요?

“암에 걸렸어도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같은 아픔을 경험한 이들끼리 만나면 마음이 조금 더 쉽게 열리고,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심리적인 지지를 넘어, 사회로 복귀하기까지의 과정 동안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암 환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실 겁니다.”


-활동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캔프 협동조합은 ‘신이 보내주셨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분들이 함께 하십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게 조합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한 단체를 이끌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라서, 배우고 고쳐야 할 점이 아직은 많습니다. 캔프의 모토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인 만큼, 매 활동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암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암 진단 전 제 삶은 브레이크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일할 때나 술 마실 때나 언제든 끝까지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암 병동을 가보니, 저처럼 너무 열심히만 살아오신 분이 많았습니다. 암을 겪고 난 후로는 제 삶에도 ‘브레이크’가 생겼습니다. 일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몸이 피곤하거나 어지러우면 휴식을 취합니다. 사람 관계 역시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는 과거와는 달리, 조금이라도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생긴다면 세 번을 참고 그 다음엔 과감하게 거리를 둡니다. 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하니, 몸과 마음이 보호받는 기분이 듭니다.”


-암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마디.

“암은 인생의 ‘정지’가 아닌 ‘쉼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았으니, 암을 계기로 강제로 쉬라는 일종의 신호인 것이죠. 암을 이겨내고 나면 오히려 더 날아오를 수 있을 겁니다. 암에 걸렸다고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살다 보면, 누구나 시련이 오는데 암도 시련의 하나쯤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암 투병에 끝이 없어 보이겠지만, 의사와 가족들을 믿고 조금만 견디다 보면 분명히 저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날이 찾아올 겁니다!”


/김서희 기자 ksh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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