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췌장암 4기 극복한 부부의 사랑
<아미랑 인터뷰>
VOL.286 (화·수·목·금 발행)
2023-09-05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힘들고 괴롭기 마련입니다. 여기 그 슬픔을 금세 떨쳐내고 췌장암을 극복한 사이좋은 부부가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행복하자’라는 생각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다니며 암 투병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2021년 3월, 박용수(63·경기도 구리시)씨는 췌장암 4기 진단과 함께 기대 여명 6개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전까지 감기조차 잘 걸리지 않는 등 건강했지만 몇 주간 평소와 다르게 복통, 변비, 소화불량을 겪어 검사를 받았다가 듣게 된 소견입니다. 그 후, 항암 치료 43회, 방사선 치료 5회, 유문보존 췌십이지장 절제술이라는 고난도 수술까지 마쳤습니다. 위에서 소화가 안 된 음식이 십이지장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위 유문을 보존하며 췌장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입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아내가 함께였습니다. ‘분홍립스틱’을 부른 가수 강애리자(60·경기도 구리시)씨입니다. 그는 남편의 회복을 지극정성으로 도우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매일 남편의 상태, 그날의 감정 등을 틈틈이 기록했습니다. 지난 5월, 그동안 쓴 병상일기를 모은 책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도 출간했습니다. 부부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박용수씨와 강애리자씨 부부>

췌장암 4기와 기대 여명 6개월을 이겨낸 박용수(왼쪽)씨와 그의 아내인 강애리자(오른쪽)씨./사진=신지호 기자


-최근 투병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셨던데,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요?

박용수씨 “올해 3월이 여명 6개월 선고를 받은 지 딱 2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2년 전과는 다르게 주치의 선생님께 ‘검사 결과, 암이 혈액 속에도 전혀 없고 깨끗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장면이 눈앞에 스쳐지나가더라고요. 그때, 아내가 우리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 책이 암 투병을 하는 많은 환자와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만약 책이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게 된다면, 수익금으로 소아암 환자들을 돕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품고 있습니다.”


강애리자씨 “태어나보니 부모님과 다섯 명의 오빠가 전부 음악을 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저와 남동생도 음악을 시작해 ‘작은별가족’으로 데뷔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분홍 립스틱’ 등 여러 음원을 내며 60여 년간 주목 받으며 그야말로 주인공의 삶을 살았는데요. 암 환자 보호자가 되고 나니 하루아침에 180도 바뀐 삶을 살게 됐습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남편의 건강상태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모든 것을 챙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도 배운 점도 참 많았습니다.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 겪었던 일, 그때의 감정 등을 세세하게 적어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나의 서사가 완성이 됐더라고요. 남편이 암 진단을 받은 지 딱 2년이 되던 날, 우리의 이야기를 남겨보자는 생각에 책 출간을 결심했습니다. 암 환자와 가족 분들은 많이 공감되는 내용일거예요. 이 책을 접할 기회가 되신다면, 많은 위로 얻기를 바랍니다.”

 

-처음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을 때 두렵거나 불안한 마음은 없었나요? 

박용수씨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감정변화를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건강했는데’란 생각에 암 진단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서웠다가 어떤 때는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면서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쳤습니다. 무엇보다 6개월 선고를 받고 나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되나 싶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되는데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하든지 서로에게 슬픔이고 고통일 것 같아 말을 꺼내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있으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던 비결은?

박용수씨 “긍정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치료를 받으려 노력한 덕분입니다. 아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어제보다 오늘 조금만 더 행복하자’입니다. 덕분에 어제보다 행복한 지금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 소중한 오늘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는 등 소소한 행동들도 행복으로 느끼게 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하는 날씨마저도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강애리자씨 “흔히 암 선고를 받으면 5단계 감정변화를 겪는다고 하는데, 저희는 그 과정을 모두 거치는데 딱 이틀이 걸렸습니다. 놀랐다가 화가 나고 슬펐다가 타협하고 수용까지 빠르게 도달했습니다. 어차피 닥친 일인데 슬퍼하고 화낼 시간이 아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때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에게 내가 어떻게든 살려주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직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하루하루 즐겁게 살다보면 행복한 일이 생기리라고 함께 되뇌었습니다. 더 많이 웃으려고 하고, 웃기 위해 즐거운 일을 찾아다니면서 지냈습니다. 분명 두렵고 슬픈 감정도 남아있었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남편이 이렇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박용수씨./사진=신지호 기자


-서로의 소중함을 가장 크게 느꼈던 때는?

박용수씨 “암 병동에 처음 입원했을 때, 보호자인 아내가 함께할 수 없어 외롭기도 했지만 분위기 자체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같은 병실에 계신 분들이 다 암환자다보니 많이들 고통스러워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밤이 돼서 불을 끄고 자려고 하면 내가 내일 아침에 또 눈을 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내와 거의 24시간 내내 붙어있었는데 떨어져 지내게 되니까 암에 대한 공포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아내 덕분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짧게나마 얼굴 보고 기운을 주려고 병원에서 계속 저를 기다렸거든요. 오전에 교수님 회진이 끝나면 5층으로 내려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만났습니다. 하루에 두세 번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습니다.”


강애리자씨 “남편이 아프고, 곧 제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말을 들으니까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1분 1초가 아깝더라고요. 당시 코로나 때문에 병실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 혼자 아파서 끙끙거리고 있을 남편이 매순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종일 병원에서 대기하며 남편이 암 병동 5층 연결통로로 내려오면 잠깐 5분 정도 얼굴 보고 그렇게 애틋하게 지냈습니다. 남편이 입원하고 떠난 집에 도무지 혼자 있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 더 자주 오기도 했습니다. 남편 옷이며 안경, 밥그릇 등등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남편의 흔적이 있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항암 치료를 총 43회 받으셨는데, 무척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박용수씨 “제가 몸집이 큰 편이라 암 투병 전에는 118kg까지 나갔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로 1주일에 10kg씩 빠지더니 76kg까지 살이 빠졌어요. 체중이나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치료를 제때 임할 수 없게 되니 체중 관리가 급선무였습니다. 그런데 항암 부작용으로 입 안 점막이 다 벗겨져 조금만 뜨겁거나 매운 맛이 느껴지면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음식들은 기본적으로 마늘,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게 많아서 항암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제가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느라 많이 고생했습니다. 시원한 음식을 찾는 저를 위해 직접 육수를 내서 냉면, 메밀국수, 콩국수 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암 환자는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는 체력, 체중 관리를 위해 넘길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종류불문 열심히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43차례의 항암 치료를 단 한 번도 건너뛰지 않고 제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애리자씨 “남편이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뭐든지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 사람이었는데 거짓말처럼 그 좋아하던 음식을 전혀 넘기지 못하더라고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구토까지 심해서 저혈당 쇼크가 와 쓰러진 적도 있어요. 이러다간 암 때문이 아니라 식사를 못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 식사를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토해도 괜찮으니 일단 먹어보자는 약속을 받아낸 뒤,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서 먹였습니다. 그런데 음식 냄새가 조금만 올라와도 남편이 먹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암에 좋다는 음식을 고집하기보다 남편이 그나마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 애썼어요. 조리한 음식을 결국 먹지 못하면 재빨리 다른 음식을 내왔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이는 것도 힘들어해서 한 가지 메뉴만 요리해서 먹이고 집 안에 냄새가 퍼지지 않게 빠르게 정리했어요. 제가 먹는 음식 냄새를 맡는 것도 힘들어할까봐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용해 베란다에서 조리하고, 간단하게 먹고 정리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항암 치료 중, 식사 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박용수씨 “처음에는 음식 냄새가 너무 역해서 먹기 괜찮은 음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과일이 당기더라고요. 그전에는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항암 치료 받을 때는 왜 이리 먹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수박을 자주 먹었는데 목 넘김이 시원해 다른 음식보다 먹기 수월했어요. 그때부터 아이스크림, 냉면 등 시원한 음식 위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췌장암에 걸리면 췌장 기능이 떨어져 혈당이 쉽게 상승합니다. 그래서 당을 조절해야 하는데,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대부분 혈당을 높이는 것들이었어요. 이때, 주치의 선생님께서 혈당은 약으로 조절할 테니,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으면서 체중을 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아내가 주는 것은 무엇이든 먹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강애리자씨 “하루에 최소 2500kcal 이상 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표를 짜서 하루에 여덟 끼를 먹이기 시작했어요. 핸드폰에 칼로리 앱을 깔고 매일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하나하나 계산했습니다. 입 안 점막이 헐어서 씹어 삼키는 것을 힘들어해 부드럽고 마실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식단을 구성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단백질 음료(200kcal) 세 팩, 밥 한 공기(300kcal)를 달걀 프라이(89kcal) 세 개랑 나눠 먹이고 두유(150kcal) 두 개 등을 포함해 2500kcal를 맞췄습니다. 조금씩 나눠 먹으니까 구토도 덜하고, 섭취 열량을 지킬 수 있어 체중을 유지하면서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시기를 놓친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박용수씨 “요즘은 못 먹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있습니다. 치료 중에 아내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2년 만에 드디어 먹었어요. 두어 숟갈 먹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고춧가루나 매운 식재료가 하나만 들어가도 속에서 불이 나니까 못 먹었었는데 이제는 건강해져서 그리웠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암 치료 중에는 음식 냄새에 쉽게 비위가 상해 아내랑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같이 자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너무 행복합니다.”


강애리자씨./사진=신지호 기자


-일부러 더 많이 웃고 즐거운 생각을 하셨다던데, 투병 중 함께 찾아낸 즐거움이 있나요?

박용수씨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하루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에 즐겁게 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여행이 참 즐거웠습니다. 저희는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암 투병 중에도 함께 순천, 부산, 광주 등을 여행하면서 좋은 경치도 보고 맛있는 거 먹고 하면서 지냈어요. 혹시 모를 저혈당 위험 때문에 아내가 온갖 간식과 음식도 잔뜩 챙겨오고, 운전도 다 해준 덕분에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시간이 나면 함께 여행을 다니려고 하고 있습니다.”


강애리자씨 “저도 함께 여행했던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2021년 7월, 남편과 거제도 여행 중에 갑자기 글이 하나 떠올랐어요. 바닷가 앞에 앉아 적은 글을 친오빠에게 보냈더니 그걸 가사로 한 노래를 한곡 써주더라고요. 당시 오빠는 남편의 유작을 남겨주자는 마음에 곡을 썼는데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노래입니다. 평소와는 반대로 남편이 메인보컬, 제가 코러스가 돼서 녹음을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노래를 마치는 게 어렵더라고요. 결국 한 달 만에 녹음을 마치고 이 곡을 발표했는데 그게 참 즐겁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당시 우리 부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노래라 더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도 췌장암과 싸우고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한 마디.

박용수씨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 모두 너무 힘드시겠지만 힘내서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환자도 힘들지만 옆에서 간호하는 가족도 보이지 않는 환자나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는 몸이 아프니까 가끔 화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감정 기복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가족은 그걸 또 큰 소리 없이 받아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서로 힘내라고 이야기해주면서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분명히 좋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강애리자씨 “무조건 잘 챙겨 드세요. 잘 먹어서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암 치료의 기본입니다. 암 진단을 받으면 고통스럽고 슬픈 감정이 많이 들 텐데,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암을 받아들이고 웃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세요. 그리고 옆에 계신 분한테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인터뷰 보시고 저희가 힘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같이 울고 웃고 이야기 나누면서 이겨 내봐요 우리!”


/최지우 기자 cj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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