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내 마음 속 어린 아이에게
사랑을 선물하세요
VOL.218 (화·수·목·금 발행)
2023-05-03

병원에서 미술치료사가 바빠지는 때는 바로 어린이날을 앞둔 5월 첫 주입니다. 이런 저런 작업들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한 번은 70대 중반의 한 암 환자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딸이 지난달에 출산했는데, 선물을 만들어주고 싶다”면서요. 돈 주고 사는 선물은 많겠지만, 아이를 위해 한 번은 직접 만든 것을 선물해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환자분은 투박한 손을 움직이며 작업하셨습니다. 그 사이 입가에는 어느새 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습니다. “딸이 참 똑똑하다. 좋은 사위 만났다. 아이가 안 생겨 걱정했는데 건강한 아들 잘 낳았다”고 어느새 속마음도 털어놓으셨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듯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따님이 아버지 병원에 방문한 날, 환자분은 점토로 열심히 만들어둔 예쁜 케이크 모형을 선물했습니다. 평생 만년필만 쥐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알록달록 점토를 조물거리며 귀여운 케이크를 만들었을 것을 떠올리며 따님은 크게 감동했습니다.


손녀를 위해 작업하셨던 환자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섯 살짜리 손녀가 좋아하는 공주 캐릭터를 예쁘게 그려, 드레스며 왕관이며 잔뜩 치장해놓고는 “아이고 배부르다”고 말하시던 분입니다. 손녀에게 작은 것이라도 만들어 줄 수 있고, 이렇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 하셨습니다.


김태은 교수가 환자에게 그려준 그림.


이 분에게 저는 어린 시절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요즘 애들이 잘 먹지도 않는 사탕이 그땐 어찌나 귀한지, 예쁜 구두도 갖고 싶었고, 공주처럼 깨끗한 치마를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하십니다. 저는 즉흥적으로 예쁜 소녀가 단정한 분홍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림을 그려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이처럼 웃으시며 바라던 바를 하나씩 더 말씀하셨습니다. ‘놀이공원에 가면 들고 다니는 하늘 높이 올라가는 풍선, 젊은 사람들이 신는 운동화, 화려한 귀걸이, 맘껏 공부할 수 있는 연필과 지우개도 갖고 싶다’고 그려 달라 하셨습니다. 그림을 보시고는 “처음 받아본 어린이날 선물”이라며 행복해하셨습니다. 손주를 위해 뭐든 해주고 싶어 하는 나이 든 환자분들 마음속에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마냥 행복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겁니다.


암 환자가 되면 삶의 통제권을 의료진이나 가족들에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병원이 주는 약을 먹고, 보호자가 주는 돌봄을 받기만 할 뿐이죠. 삶의 통제권을 잃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작은 선물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를 위해 예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세요. 사람은 의미를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어색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미술이라는 행위는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감사와 사랑을 다채롭게 표현하세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될 겁니다.


/김태은 드림
암에 걸리고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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