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남 박사의 레터를 연재합니다. 이준남 박사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내과 의사이자 자연치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입니다. 암 생존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건강 수칙을 담은 ‘암 이후의 삶(리스컴 刊)’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요.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준남 박사가 말하는 ‘암 치료 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아미랑이 연재합니다.
암은 더 이상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닙니다. 치유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난치병일 뿐입니다. 길어지는 투병 기간에도 무사히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암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관리의 성패는 곧 투병생활의 성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암을 진단받고 가장 처음 해야 하는 일,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감정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미국 UCLA의 정신의학자 마가렛 케메니 박사는 심리학과 인체 면역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직업배우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20분 정도 짧은 시간 동안의 감정 변화가 면역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배우들은 정해진 감정에 잘 몰입할 수 있도록 훈련된 사람들이죠. 이들이 슬프거나 행복한 느낌의 대사를 독백으로 읽고 강렬한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한 뒤 이들의 혈액을 채취해 자연살해세포(NK세포)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그 결과, 슬픈 이별 장면을 연기한 배우의 혈액에서 NK세포의 숫자가 늘어나고 세포 활동성이 강화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감정이 생리작용에 변화를 일으킨 겁니다. 보통 슬픈 감정은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이 연구에서는 슬픈 감정을 느낄 때 NK세포가 증가했습니다. 격렬한 감정이 몸에 이롭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보통 기분 좋은 감정은 몸에 좋고 슬픈 감정은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좋을 때나 슬플 때 혈액 속 백혈구가 늘어나는 현상은 똑같이 일어난다는 게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다만 외로움, 공포, 우울 등은 해소하지 못하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들은 반드시 해소해야 합니다.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보면, 이성은 대뇌의 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감정은 대뇌 변연계에 뿌리를 둔 현상입니다. 피질은 심장, 위장과 연결되지 않아 몸의 생리작용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변연계는 몸의 모든 기능을 관장하는 뇌교와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감정은 심장이나 위장 같은 장기나 자율신경에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 상태에 따라 신진대사, 혈압, 맥박 등이 금세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건강을 위한다면 감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감정을 억제하면 건강에 역반응이 일어납니다. 어떤 감정을 해소하지 않고 오랫동안 담아두면 이에 해당하는 생리작용이 한쪽으로 치우쳐 나타납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억눌러 가슴에 품고 있으면 그 감정으로 인해 치우친 생리작용이 암 같은 병으로 연결됩니다.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오 헨리의 대표적인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잎을 보고 “저 잎이 떨어지면 나도 죽을 거야”라고 말했던 주인공이 이튿날 아침까지 매달린 잎새를 보고 다시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는 다들 아실 겁니다. 암에 걸렸더라도 ‘나는 죽을거야’ 대신 ‘나는 괜찮다’고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의 감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잘 표출하세요. 감정을 잘 다스려 몸에 이로운 변화를 만드세요. 같은 일을 바라보더라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땐 쌓아만 두지 말고 적절하게 표출하는 방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