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의사입니다”
<아미랑 인터뷰_이병욱 박사>
VOL.128 (화·수·목·금 발행)
2022-11-23

76세에 붓을 들기 시작한 미국의 화가, 애나 메리 포버트슨 모지스. ‘그랜마 모지스’로 불린 그녀는 뉴욕 북부 지방의 한 농장에서 태어나, 농장에서 일하고, 농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시골 사람입니다. 67세에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농장 일을 그만두고 딸의 집에서 지내기 시작합니다. 평소 손재주가 좋아 자수를 즐겨 했지만 관절염 때문에 더 이상 자수를 놓는 게 힘들어져, 딸의 권유로 76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00세로 사망할 때까지 수천 점의 그림을 그린 ‘할머니’ 화가. 이런 그랜마 모지스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당신께 보내는 편지’로 아미랑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이병욱 박사님입니다.


오랜만에 이병욱 박사님을 만나러 간 곳은 병원이 아닌 성북구에 위치한 ‘르한스’ 갤러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암박사 이병욱의 행복한 그림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낙엽이 주변을 가득 메워 꽤 운치 있던 곳에서, 전시회 이름처럼이나 ‘행복한 그림’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힘’에 대해 들려 드립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 그림을 그린 건 의대생 시절입니다.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그림을 그렸다가 일상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그림과 멀어졌습니다. 그러다가 6년 전부터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선물로 그림을 주기 위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모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작품을 완성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평온해서 마음이 치유됨을 느꼈습니다. 온 신경을 그림에 집중하니, 마치 명상할 때처럼 잡념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제 환자들에게도 그림을 그리시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예술치료가 여러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6년 전만 해도 암 환자들에게 그림을 그리기를 권하는 의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웃음치료, 울음치료처럼 예술치료도 제가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고 볼 수 있죠.


-예술치료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그림을 그리는 것뿐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거나 조형물을 만드는 등 예술에 신경을 집중시킴으로써 치유 효과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신경정신면역학, 신경정신종양학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스트레스가 암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예술 등을 개입시켜 암 발생 및 재발 위험을 줄이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 감정을 쏟아내고, 암에 집중돼 있던 신경을 예술 행위에 분산시키기 때문에 묵상이나 명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얻은 변화가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저는 행복한 그림을 그립니다. ‘일상은 아름답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주제를 그림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 퇴근길에 보이는 야경, 선조들의 땀과 눈물, 여행에서 만난 생경한 풍경 등을 그리다 보면 그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랜마 모지스 역시 화폭에 자신의 일상을 담아낸 화가입니다. 농장 생활과 시골 풍경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76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해지고 나서는 그림 한 점에 1만 달러에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을 통해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 아닐까요.


-진료했던 환자 중에서도 ‘예술의 힘’을 경험한 분이 있나요?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방암 환자 한 분이 생각납니다. 제 권유로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다가, 재능을 발견하시고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그림에 빠지신 분입니다. 암에 걸려 상처 입은 마음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저절로 치유됨을 느꼈다고 합니다. 암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었고, 자연스레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되면서 암에 걸리기 전보다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완치돼 건강한 삶을 누리고 계십니다.

-암 환자들이 왜 그림을 그려야 하나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 ‘행복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따뜻한 색감을 사용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저절로 행복을 느끼게 될 겁니다. 나아가 감사함을 느끼게 되지요.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암 치료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암 치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한 작품을 완성하고 얻는 쾌감과 성취감을 통해 ‘그림에 끝이 있듯 암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절망 같던 암이라는 터널을 얼른 빠져 나와 희망을 마주하도록 돕는 것이죠.

꼭 암 환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림을 그리면 좋겠습니다. 넓게는 누구나 한 가지씩 예술을 곁에 두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정신이 건강해질 겁니다.


-화가 이병욱, 의사 이병욱의 목표는?

화가로서도 의사로서도 행복을 전파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제 작은 몸짓과 노력 덕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제 그림을 본 이들이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감사함을 느끼기를, 제게 진료 받은 암 환자들이 암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진료를 볼 것입니다!


“나는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의사”라는 이 박사님의 말처럼 전시장에는 ‘행복한 과일가게’ ‘아름다운 풍경’ ‘행복한 시간’ ‘우리가 사는 아름다운 세상’ 등 제목에서도 행복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행복한 그림 초대전은 12월15일까지 열리며, 누구나 무료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한 그림 초대전에서 행복을 한가득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한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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