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인터뷰>
‘순례자의 길’ 걷듯…
암과의 싸움에서 지치지 않는 마음 관리법
VOL.64 (화·수·목·금 발행)
2022-08-02

‘마른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 암을 진단받은 후 암환자들이 겪는 심정일 겁니다. 누구든 암에 걸릴 수 있지만,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과 두려움이 휘몰아치는데요. 이런 심리적 고통을 관리해야 암 예후가 좋아진다는 게 의학계에서는 이제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암환자들의 정신적 관리를 연구하는 한국정신종양학회가 있습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석 교수를 만나 암환자의 정신 건강 관리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김태석 교수
<김태석 한국정신종양학회장(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암이 파괴하는 정신건강

암은 환자들에게 어느 정도로 고통을 주나요?

“암이 의심되는 순간부터 긴장감이 환자를 급습합니다. 환자는 평소와 다른 신체적 증상을 느껴 병원을 내원하거나, 병원에서 ‘정밀한 검사를 위해 큰 병원을 가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부터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장감이 지속됩니다. 긴장감이 극에 달해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질 정도입니다. 이 시기에 소화가 안 되거나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나타나는 신체화증상입니다.”


암 진단 후 심리 변화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암을 인정하는 ‘수용’ 단계로 가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부정→분노→우울→흥정→수용의 단계를 거치는데요. 환자들마다 순서나 각 단계의 기간은 다르지만, 최종 단계인 ‘수용하는 마음’을 빨리 가질수록 예후에 좋습니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비로소 치료나 행동 변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수용 단계로 빨리 접어들기 위해서는 암이라는 사실보다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초조하고 불안한 현실 속에서 기분 전환을 위해 작은 행동을 하는 것도 방법인데요. 목욕, 요가, 산책, 음악듣기 등 다소 정적인 활동을 하면서 나쁜 생각에 잠기는 걸 피해야 합니다. 만약 수용의 단계까지 도달하는 게 힘이 들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도움을 받기를 권합니다.”



암환자 심리, 어떻게 관리하나

‘정신종양학’이라는 학문도 그래서 필요한 건가요?

“암 생존율이 낮았던 과거에는 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둔 치료를 우선시했습니다. 암을 극복시켜 환자를 오래 살게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암 치료법이 발전해 생존율이 70%로 높아졌습니다. 삶의 양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중요해진 것이죠. 그래서 정신종양학회에서는 암환자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습니다. ‘의료 선진화’의 일환입니다. 암은 삶과 죽음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져다주는데, 이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지지가 절실한데, 이를 위해 의료진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연구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얼마나 되나요?

“아직까지 많지는 않습니다. 암환자의 30~50%가 디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통계에 비하면, 병원을 내원하는 암환자는 5% 수준으로 매우 드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편견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럴 땐 꼭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니어도 암 주치의에게 스트레스 상황을 털어놓기를 권합니다. 힘든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상당합니다. 제가 속한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특정한 암 치료 단계에 다다르면 무조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나게끔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습니다. 환자의 고민을 듣고,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뒤 암 치료 계획을 제시하는 겁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상담부터 시작합니다. 여러 단계의 치료가 있지만, 심리 상담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낼 수 있기도 합니다, 심할 경우 약도 처방합니다. 생체리듬이 깨져 잠을 못 자거나 식욕이 떨어져 체력 회복이 어려운 환자들은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좋습니다.”


암과의 긴 싸움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저는 암환자들에게 가톨릭에서 말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한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순례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도착 지점 자체보다는 과정을 더 생각하고 중요시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암환자는 ‘완치’라는 도착 지점만 바라보기보다는 극복하는 과정을 잘 꾸려야 합니다. 암은 의학적으로 5년이 지나면 완치를 의미하는데요. 암 진단을 받고 암 치료를 받는 기간은 1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남은 기간을 암환자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김태석 교수

보호자의 마음도 함께 돌봐야

보호자의 정신건강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암환자와 마찬가지로, 보호자에게도 암 진단은 청천벽력 같은 일입니다. 초반에는 암환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보호자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보호자와 환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보호자도 본인의 일상을 건강하게 영위해야 합니다. 일상과 환자 보살핌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보호자가 환자를 위해 가져야 하는 마음은?

“그저 많이 들어주기만 해도 좋습니다. 환자가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그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어주세요. 실제로 심리치료 기법 중 제일 중요한 것이 환자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잘 듣고 나면 ‘아 이런 마음을 갖고 있구나’ ‘이렇게 힘들구나’ ‘혼란스럽구나’라는 공감의 마음이 생깁니다. 보호자로서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게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권유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암환자가 ‘이것만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

“암환자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아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취약해집니다. 다소 편향적인 온라인 정보에 마음을 뺏기다 보면 암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암환자들에게 “믿을만한 정보만 취하라”고 얘기합니다. 헬스조선의 아미랑 같은 공식적인 뉴스가 도움이 됩니다. 또, 궁금증이나 고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의료진에게 물어보기를 권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의 주치의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재 암 치료율이 70%가 넘는다는 걸 기억하길 바랍니다. 암 완치율이 40%였던 과거와는 엄연히 다른 시절입니다. 좀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마지막 한 말씀.

“암은 단순히 개인의 위기가 아닙니다. 건강하게 일을 하거나 살아야 할 사람의 일상이, 암에 걸리는 순간 멈춰버립니다. 가족의 위기이자 거시적으론 사회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암은 단기간에 해결되는 병이 아닙니다. 최소 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기에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긴 여정을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환자와 가족이 ‘암 극복’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마음을 굳건히 다지세요. 환자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듯, 가족들도 똑같은 감정으로 환자와 보폭을 맞춰 암을 대응하면 됩니다. 서로에게 의지하면 암을 이겨내는 데 정말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김서희 헬스조선 기자 ksh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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