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⑧] 박종석 원장의 '음란물 중독' 이야기

입력 2020.07.16 16:23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박종석 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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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박사' 조주빈(24·구속기소)의 n번방 성착취 범행에 가담한 남경읍(29)의 얼굴이 15일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 23일에는 n번방을 처음 만든 갓갓 문형욱(24)과 함께 피해자를 협박한 안승진(25)의 얼굴이 공개됐는데, 그는 계속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음란물 중독으로 인한 것 같다"고 이야기해 화제된 바 있다.

'음란물 중독'은 실제 존재하는 질환일까? 그리고 음란물 중독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음란물 중독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박종섭 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박종섭 원장은 "음란물 중독 때문에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안승진의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음란물에 중독됐다고 해서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또 성범죄는 절대 충동적이지 않고 100% 계획된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뇌에는 욕망을 통제하는 전두엽이 있고, 전두엽 중에서도 전전두엽이 죄의식, 행동판단력 등을 관장해요.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계산이 굉장히 복잡하고 순차적으로 일어납니다. 특히 성범죄는 생각부터 실행까지 수백까지의 멈출 수 있는 단계가 존재합니다. 술을 먹고 충동적으로 누구를 때리는 것과도 별개의 이야기예요. 안승진의 말은 단지 죄질을 낮추기 위해 얘기한 변명일 뿐이지 합리적이라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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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박 원장은 실제 음란물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성인이 음란물을 보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시청으로 대인관계, 일상이 망가지면 반드시 '브레이크'가 필요해요.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인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자신의 음란물 시청이 병적인 수준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4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가학적이고 강제적인 성행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 착취물 볼 때다. 두 번째는 이런 영상물 때문에 일상이 망가지고, 직장에서도 음란물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학생의 경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상과 음란물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고도 영상에서 본 이미지를 떠올린다. 세 번째는 새로운 음란물을 구하기 위해 과도하게 충동적인 행위를 하고, 밤을 새워서 음란물을 보고, 과도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번째 경우인데 일상적 속의 즐거움, 쾌감에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음란물을 보는 것 외에는 평소에 좋아하던 만화책, 게임, 데이트를 해도 시시하다고 느낀다.

음란물 중독으로 고민인 환자는 이를 고백하기 부끄러워 병원까지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더니, 박 원장은 실제 몇 명의 음란물 중독 환자를 보고 있다고 했다. 박종석 원장은 "야동을 보느라 고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음란물을 과도하게 시청한다는 등의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음란물 중독이 유발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우선 대인관계에서 위축되고 고립된다.

"음란물에 중독돼 하루 5~6씩 야한 동영상(야동)을 보며 밤을 새우면 자신도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수치심을 느껴요. 하지만 쾌락만을 찾게 되다 보니 평소 삶의 방식이 '인내' 없이 '결과'만 바라는 식으로 바뀝니다. 상대와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 것이죠. 연애를 할 때도 감정의 교감 없이 육체적인 관계를 과도하게 원하게 돼요. 결국 '데이트 폭력'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음란물 중독이 뇌를 쪼그라뜨려 기억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독일 뒤스부르크 대학에서 2012년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음란물을 시청하게 한 그룹에서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기억력이 13% 떨어졌습니다. 실제 음란물 중독자들의 뇌는 일반 사람보다 쪼그라들었다는 연구가 있어요. 뇌에는 계산, 기억 등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이 있는데 이 대뇌피질이 심각하게 쪼그라들면 기억력, 판단력 등이 낮아지는 것이죠. 뇌가 빨리 늙는다고 보시면 돼요"

음란물 중독으로 병원을 찾으면 보통 국제트라우마중독전문소(ITAP)가 만든 '음란물 중독 자가진단 테스트'를 받게 된다. 박 원장은 여러 검사 중 이 테스트가 가장 정확하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이 테스트를 통해 위험, 고위험군에 해당되면 우울증, 스트레스, 불안 검사를 진행한다. 더불어 일상에서 대인관계, 직접적 기능에 저하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면 치료를 시작한다.

박 원장은 상담치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를 객관화시켜서 수치심, 양심 등을 불러일으키는 '인지치료'가 주로 이뤄진다. 더불어 음란물 중독자는 쾌감 중추에 과도한 자극이 매번 가해지는데, 이를 덜 느끼게 하는 약물을 쓰거나, 오이오피드 차단제 등을 써서 야동을 보고 싶은 욕구를 줄일 수도 있다.

"인간의 뇌는 어떤 부분 하나에는 꽂히게 돼 있어요. 모든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거죠. 일 중독일 수 있고, 술 중독, 담배 중독 등 많죠. 하지만 이 중독이 과도해져서 건강을 해치거나 일상을 방해하면 안 돼요. 운동, 건강한 음식에 대한 중독 등 내 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독이면 좋습니다. 중독이 과해지지 않으려면 어떤 중독이든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다른 중독으로 갈아타는 노력을 하는 게 좋아요"

박종석 원장은 "자신이 음란물 중독이라고 느껴지면, 자가진단을 해보고, 필요하면 치료를 받고, 무엇보다 경각심을 가지면서 한 번에 '딱' 끊을 수 있는 절제력을 발휘해보세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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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그날 스트레스는 그날 푸세요"

박종석 원장은 직장인 등 비교적 젊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회사가 많은 지역 중 정신과가 많지 않은 '구로'를 개원 위치로 정했다. 문을 연 지는 1년 6개월 정도. 대부분의 개원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목표하는 '환자와의 충분한 대화와 상담 제공'을 위해 노력한다. 더불어 그의 진료철학은 '좋은 리스너가 되는 것'이다.

"레지던트 1~2년 차, 경험이 적을 때는 내가 말을 많이 해 환자에게 가이드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정신과 의사 14년 차가 된 지금은 말을 거의 안 해요. 환자의 말을 듣고, 환자가 얘기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아는 답을 스스로 리마인드 하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지 환자가 옳다고 여겨요. 이를 기반으로 환자를 개선시키려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죠. 또 환자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진심으로 고민하면 환자가 많이 바뀝니다. 실제 많이 경험해온 사례예요"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물었더니, 일단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날, 당일에 해소한다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 팬인데, 항상 성적이 안 좋거든요. 맨날 져요. 혼자 마음 놓고 비난하면서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십니다. 그럼 스트레스가 많이 없어져요. 물론 스트레스가 '0'이 될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가 '나'라는 물잔을 가득 차 넘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를 위해 매일 '음성 일기' 써볼 것도 권장했다. 녹음하는 것 자체로 일차적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녹음을 듣다 보면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파악하고 감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신 건강을 위해 일부러 '자존감 높이기'에 집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

"자존감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낮았으니까 불행할 거야'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지 않아요. 자존감은 나의 '오늘 상태'를 말하는 것뿐이에요. 일주일, 한 달 후 내 자존감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아무도 몰라요. 우울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우울하지만, 다음 달이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거든요. 스스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자존감도 높아지고, 우울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요. 아주 중요합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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