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소울푸드] 달빛·별빛 머금고 한 편의 詩가 된 시골집 시래기

입력 2020.01.31 09:06

[7] 이재무 시인

이재무 시인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대단한 식재료도 결국 수소·산소·탄소·질소의 조합이어서 화학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시래기는 예외다.

"무청은 삼동 내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꼬들꼬들 말라간다. 그 동안에 밴 습기가 영하의 날씨에 얼면 그 살얼음 속으로 달빛이나 별빛이 스며든다. 한밤중 숲속에서 뛰쳐나온 부엉이 울음소리가 시래기 몸속을 파고들고 강둑을 타 넘고 온 된바람도 깊게, 시래기 안쪽으로 박혀서는 시래기의 일부가 된다."

40~50년 전, 충남 부여의 한 시골집 풍경이다. 시래기는 그렇게 달빛·별빛과 강바람, 새 울음을 품으며 화학을 뛰어넘는다. 이재무 시인(61)이 어릴 적 먹던 시래기다. 시인은 "무청이 시래기가 돼가는 과정에서 신산고초를 겪으며 살다 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했다.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의 첫 챕터에 시래기론(論)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재무 시인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처마 끝으로 시래기 여위어가던 시골집을 떠나 서울로 온 게 20대 중반의 일이다. 주소는 왜 이리 긴지, 달에 닿은 동네를 전전하다가도 어디에서건 시래깃국을 맛보면 훌쩍, 마음은 강 자락의 시골마을로 날아갔다.

"그리움은 감각으로 오죠. 그 중에서도 후각으로요. 프루스트의 소설에서도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한 입이 과거로 통하는 문을 열어줬죠."

그러나 그리움은 상심(傷心)의 다른 이름이다. 달빛과 별빛 머금은 어머니의 시래깃국은 어디로 숨어들었나.

"참 단순한 음식이었죠. 시래기, 된장에 왕멸치 몇 개면 끝이었으니까요. 서울에선 돼지고기를 넣기도 하던데, 제 맛이 아닙니다. 된장을 걸러 붓고 왕멸치를 우려내야 비위를 돋웁니다."

어머니의 시래기로 단련된 시인의 순수 미각은, 다양한 음식을 그의 시(詩)로 끌어들였다. 최근 낸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에도 김치찌개, 국밥, 김밥, 수제비가 등장한다. 시인은 "그간 쓴 시 중에 음식에 관한 게 40편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래기를 다룬 적은 없다. 겨울밤을 빛내던 시래기 한 올 한 올이 그에겐 이미 한 편의 시였을 테니.

이재무 시인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 어느 갈피에 숨겨뒀나. 깡깡 마른 시래기는 단백질·칼슘·식이섬유로 빡빡하다. 비타민D의 함량도 유별나 칼슘을 쉽게 뼈로 스미게 한다. 빈약해 보이는 채소에 부여된 '겨울철 보양'의 권위는 괜한 게 아니다. 거기에 무청이 생기 떨구는 사이 칼바람에 뒤섞여 들어간 어머니의 세월, 그 인고(忍苦)까지 더해 시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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