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소울푸드] 그 가을 '대폿집 기행'… 돼지비계 김치찌개의 추억

입력 2020.01.03 09:12 | 수정 2020.01.03 09:40

[4] 사석원 화가

사석원 화가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꽤나 오래전 일이지만 2000년대 초반의 늦가을, 조선일보 문화면에 술과 안주 얘기가 면을 털어 등장한 적이 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폿집 기행' 연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전국의 주당(酒黨)을 들썩이게 한 초유의 술집 탐방기를 쓴 이는 화가 사석원(59)이다. 기행을 핑계로 들른 대폿집 안주 가운데 하나였을까. 세밑, 서울 방배동 사석원의 작업실에 갔다가 김치찌개 얘기에 푹 빠졌다. 그냥 김치찌개일 리 없다.

"비계와 껍데기가 중요하죠. 돼지고기를 씹을 때 느낌이 다르니까요. 껍질을 툭 깨물면 비계가 확 터지면서 피로가 싹 가시는…."

그러니까 사석원의 소울푸드는 이름이 좀 길다. '껍데기가 꼭 붙어 있어야 하는 돼지비계 김치찌개'. 게다가 삼겹살은 안 되고 사태여야 한다. 힘줄 씹는 맛을 포기할 수 없으니. 그런데 껍질 붙은 채 비계 풍성하면서 힘줄 적당한 사태를 어디서 구하나.

"동네 정육점에 엄살을 떨어놨죠. 살코기를 너무나 싫어한다고."

어릴 적 할아버지가 즐기던 음식이다. 그 땐 총각김치도 들어갔다. 폭 익은 무와 색 바랜 무청이 껍질·비계 탱탱한 돼지고기 사이로 삐죽했다.

사석원 화가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외국서 전시 마치고 돌아오면 첫 끼니는 늘 돼지비계 찌개입니다. 말 안 해도 집사람이 준비해 둡니다."

이런 입맛은 시대를 넘어 대물림된다. 김치찌개를 두고 아이들과 한 상에 앉으면 비계 쟁탈전이 벌어진다.

"뿌듯하죠. 내 유전자를 받은 아이들이 맞구나 하는…."

전국의 후미진 골목을 지켜주던 대폿집들은 십 수년 전의 대폿집 기행과 함께 사라졌다. 추억의 허기를 달래며 사석원이 요즘 헤매는 곳은 시장이다. 일주일에 한 번, 신새벽의 노량진 수산시장과 마장동 축산시장을 찾는다. 사기도 하고, 구경만 하다 돌아오기도 한다. 화가의 눈앞으로 펼쳐지는 생선과 고기들의 향연. 무릇 미식가는 색(色)과 향(香)으로도 즐겁다.

☞ 화가가 돼지고기 한 조각을 질끈, 깨무는 순간 콜라겐(껍질)-지방(비계)-단백질(살코기)이 차례로 허물어진다. 쾌감 속에서 화가의 몸은 아미노산(콜라겐·단백질)과 지방산(지방)의 유입을 기대한다. 각종 무기질로 무장한 배춧잎의 가세. 느끼한 끼니 후의 귀국길 아니어도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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