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양극성 장애 지침, 약물간 '장벽' 허물다

전문가 합의 기반으로 약물치료 지침서 4차 개정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양극성 조증·우울증에서 선호도 상승

언론사

입력 : 2018.12.12 09:12

 
출처:mo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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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국내 전문가 합의(expert consensus)를 기반으로 개발되는 '한국형 양극성 장애 약물치료 지침서'가 4년 만에 개정됐다.

이번 4차 개정판은 지난 3월 책으로 발간된 후 양극성 장애 치료전략에 대한 권고안만 추려 Clinical Psychopharmacology and Neuroscience 지난달 30일자에 실린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Clin Psychopharmacol Neurosci 2018 Nov 30;16(4):434-448).

약물치료 지침서에서 주목할 점은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3차 개정판과 달리 양극성 조증 환자에서는 기분조절제와 함께 1차 치료로 이름을 올렸고, 양극성 우울증 환자에서는 항우울제보다 우선 권고됐다. 

이는 비정형 항정신병약물과 기분조절제, 항우울제 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양극성 장애 환자 범위가 넓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양극성 조증에서 몸집 키우는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은 양극성 조증 환자의 1차 치료로 이름을 올리며 몸집을 키웠다. 

3차 개정판에서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단독요법은 정신병적 조증 환자에게만 1차 치료로 권고됐고, 비정신병적 조증 환자에게는 기분조절제 치료를 진행한 후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2차 치료로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을 적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에서는 정신병적 증상 동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양극성 조증 환자에게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을 1차 치료로 투약하도록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양극성 조증 환자의 경우 비정형 항정신병약물과 기분조절제의 병합치료 또는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및 기분조절제를 이용한 단독치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침서 개발에 참여한 가톨릭의대 우영섭 교수(여의도성모병원 정신겅강의학과)는 "과거에는 조증 환자의 초기 치료에 기분조절제를 단독으로 쓰고 이후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을 투약하도록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비정형 항정신병약물과 기분조절제를 굳이 구분해 쓰지 않는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비정신병적 조증 환자도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을 1차 치료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외 양극성 장애 가이드라인과 차이가 있다면,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인 올란자핀을 비정신병적 조증 환자의 1차 치료로 포함시킨 점이다. 

캐나다기분장애·불안치료네트워크(CANMAT)가 발표한 '2018년 양극성장애 관리 가이드라인'에서는 올란자핀을 양극성 장애 환자의 1차 치료가 아닌 2차 치료로 제시한다. 치료 효과가 우수할지라도 대사증후군 위험이 커지는 등 안전성 및 내약성 측면에서 우려되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국내 임상의 경우 여전히 올란자핀의 선호도가 높아 전문가 합의에 따라 이번 개정판에서도 1차 치료로서 자리를 지켰다. 아직 국내에서는 안전성보단 치료 효과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고, 외국과 달리 국내에 도입된 신약이 없어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약물이 제한적이기에 올란자핀 권고안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게 우 교수의 전언이다.

'항우울제'→'비정형 항정신병약물', 양극성 우울증 치료 무게추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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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 우울증 환자 치료전략은 항우울제에서 비정형 항정신병약물로 치료 무게추가 이동했다. 양극성 조증과 마찬가지로 양극성 우울증 치료에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의 선호도가 높아졌지만, 항우울제 사용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3차 개정판의 경우 양극성 우울증 환자 치료에 기분조절제와 항우울제 병합치료를 1차 치료로 권고했으나 이번 지침에서는 2차 치료로 권고 수준이 약화됐다.

이에 따라 양극성 우울증 환자에게는 기분조절제,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또는 라모트리진을 이용한 병합치료 혹은 단독치료를 우선 권고했다.

항우울제의 선호도가 낮아진 까닭은 항우울제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됐고 다른 약물들이 양극성 우울증 환자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외국은 이전부터 양극성 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투약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항우울제를 처방하던 상황이었다"면서 "이번 지침에서는 항우울제의 선호도가 조금 낮아졌다. 항우울제를 대체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고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이 양극성 우울증에 효과적이라고 확인돼 항우울제를 초기 치료로 처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라모트리진을 1차 치료로 제시한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급성 양극성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중맹검 위약 대조군 연구 결과, 라모트리진 단독요법이 위약 대비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Bipolar Disord 2008;10:323-33). 

다만 라모트리진을 1차 치료로 권고하는 점은 우리나라와 캐나다가 동일하다. CANMAT 가이드라인에서는 라모트리진의 우월성 입증에 실패한 임상시험에 방법론적인 문제가 있으며, 메타분석에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확인된 점 등을 근거로 라모트리진을 양극성 우울증 환자 1차 치료로 제시했다. 

우 교수는 "라모트리진의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결과가 혼재됐지만, 장기간 복약하면 우울증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근거는 확실히 있다"면서 "양극성 우울증 환자의 유지치료로서 라모트리진이 장기적으로 효과적이며 안전하다는 전문가 의견 일치가 있었기에 이번 지침에서 이 같이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혼재성 양상, '혼재성 삽화' 빠지고 '재분류' 이뤄져

혼재성 양상 치료의 경우 2013년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5판(DSM-V)'이 발표됨에 따라 치료전략을 제시하기에 앞서 분류부터 변화를 줬다. 

3차 개정판에서는 혼재성 양상을 △조증 삽화에서 나타나는 혼재성 양상 △우울증 삽화에서 나타나는 혼재성 양상 △DSM-IV 진단 기준의 혼재성 삽화 등으로 나눠 조사했다.

그러나 DSM-IV가 제시한 혼재성 삽화는 조증 삽화, 우울증 삽화 모두 만족해야 하기에, 실제 임상에서 환자 진단이 잘 되지 않는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이에 DSM-V에서 혼재성 삽화가 배제됐고, 이러한 변화를 이번 지침에 반영해 혼재성 양상을 △조증 증상군이 우세한 혼재성 양상 △우울증 증상군이 우세한 혼재성 양상 △조증과 우울증의 증상군이 서로 비슷한 혼재성 양상 등으로 나눴다.

혼재성 양상 분류 변화로 이번 지침에서는 1차 치료 중 최우선 치료(treatment of choice)로 권고할 수 있는 치료제 대한 전문가 합의가 이뤄졌다. 증상에 따라 질문을 세분화해 제시하면서 기존 지침과 달리 전문가 합의가 쉽게 도출됐다는 게 우 교수의 설명이다. 

전문가 합의에 따라 조증 증상군이 우세한 혼재성 양상의 경우 발프로에이트를 최우선 치료로 권고했다. 이를 제외한 다른 혼재성 양상 분류에서는 최우선 치료를 명시하지 않았다.

"효과적인 양극성 장애 신약, 국내 도입 시급"

4차 개정판은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약 조합이 늘어나 치료가 복잡해는 가운데 임상에서 환자 치료의 길잡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 교수는 "양극성 장애 환자 치료 시 약물을 하나씩 찾아보면서 치료할 수 없다. 특히 전문의가 아니라면 환자 치료가 쉽지 않다"며 "양극성 장애 치료에 대한 근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제작한 진료지침인 만큼 임상에서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외국에서 개발돼 주요 가이드라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루라시돈, 아세나핀, 카리프라진 등 신약이 국내에 하루빨리 도입돼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쓸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 교수는 "우리나라는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약물이 외국보다 적다. 양극성 장애에 큰 효과를 보이는 약물이 있음에도 약가 문제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초기 치료부터 약물 단독치료보단 병합치료의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약물 조합을 많이 할수록 안전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효과적인 신약이 국내에 빠른 시일 내에 도입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shpark@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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