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골의사가 세상을 바꾼 ‘인공관절’

진화하는 인공관절 이야기

강남연세사랑병원/고용곤 원장

‘인공관절’이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해 전 세계 의료계는 혁명과도 같은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인공관절 수술 방식은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시행할 정도로 가장 흔한 수술 중 하나가 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교한 의료기술이 더해져 놀라울 정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의 ‘인공관절 수술’은 관절 기능을 개선하는 수술이라는 관점에서 ‘관절 성형술’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관절 성형술’은 영국의 한 정형외과 의사의 집요한 관심과 의지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처음에는 의사로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이 관절 성형술의 창시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엔지니어를 찾았다. 그의 지혜로운 판단은 결국 의사로서의 꿈인 ‘관절 성형술’을 완성하는 데 있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관절 성형술’의 핵심 무기인 인공관절의 성공을 알린 의사는 바로 ‘존 찬리(John Charnley)’이다.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존경하는 의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자주 언급될 정도로 이 세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인공관절의 선구자인 그가 노벨의학상을 받지는 못했다.

1911년 8월, 영국 어웰강(江) 연안 지역인 베리(Bury)에서 태어난 존 찬리는 어려서부터 약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과학적 소질을 발견한 부모의 권유로 고등학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취득한 후 같은 대학에서 외과와 해부학 및 생리학의 학위도 취득했다. 이러한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가 평범한 시골의사에 안주하지 않고 훗날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 분야뿐 아니라 다른 학문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특히 기초 연구를 위해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과 협력하거나 금속공학 및 화학공학까지 지식을 넓힌 점은 그가 어떻게 인공관절과 관절 성형술의 탄생에 이바지할 수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존 찬리는 외과의로서 많은 경험을 쌓기 시작한다. 그는 직위도 없이 오후와 밤 동안 응급 환자를 돌보기 위해 응급실에서 상주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골절 클리닉에서 증례(證例)를 담당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들과의 접촉은 수술 경험이 없던 그에게 매우 유용한 기회였을 것이다.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쌓으려는 노력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서도 계속된다. 존 찬리는 영국 육군 의료단에 자원하면서 군에 합류한다. 누군가에게는 슬픔과 아픔을 안겨다준 전쟁이었으나 존 찬리는 의료 책임자로서의 경험을 쌓는 동시에 외과의로서의 경력을 쌓는 운명과도 같은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전쟁이 끝난 후 존 찬리는 그간 마음속으로만 쌓아둔 뼈 이식과 결합, 뼈 압축, 관절 기능 등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료 의사에게 다리 수술의 과정을 테스트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다소 기행처럼 보일 수 있는 일화지만, 실질적인 임상 경험이 절실했기에 이런 행동마저도 주저하지 않은 듯하다. 그 이후에도 실험적인 노력은 계속되었고, 번번이 무산되거나 실패했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임상 경험은 골관절염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인공관절을 만들 수 있는 적합한 재료를 찾기 시작한 존 찬리는 마침내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공 고관절’을 디자인했고, 처음으로 마찰이 적은 ‘관절 성형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사실 ‘관절 성형술’이 성공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반복된 실패를 경험해야 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 결과 인공관절의 윤활 기능을 위한 마모가 더딘 소재를 개발하고, 관절 내 감염을 최소화하는 수술 절차, 수술 후 상처 부위의 감염 예방 등의 성과를 이뤄내 지금의 안전한 인공관절 수술로 정착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심지어 사망할 당시까지도 그는 더 나은 관절 성형술과 인공관절 소재를 향한 개선 의지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 ‘인공관절 치환술’의 창시자로서 존 찬리의 ‘관절 성형술’이 인류에 기여한 바를 놓고 본다면 그의 업적은 너무나도 과소평가된 듯하다. 하지만 그의 선구자적인 기술과 지식은 전 세계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전해졌고, 현재도 그가 설립한 관절 센터에서 수많은 의사들이 연수를 받는다. 존 찬리는 1977년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화하는 인공관절 이야기

더 이상 쓸 수 없는 관절을 새 관절로 바꾸는 인공관절
더 길어진 수명, 더 스마트하게 진화하는 인공관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인턴 수료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수료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수료
- 現 대한정형외과학회 정회원
- 現 대한정형외과 슬관절학회 정회원
- 現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학교실 외래교수
- 現 연세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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