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저림, 과연 혈액순환 장애일까?

함께 가는 길

보라매병원/정우영 교수

일반인들은 아무래도 의학용어가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게 마련이고 대개는 관심 밖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높은 관심을 보이며 즐겨쓰기까지 하는 용어가 하나있다. 바로 ‘혈액순환’이다. 아마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이전에 민초들의 건강을 담당하였던 한의학에서도 ‘혈액순환’이라는 말은 계속 사용되고 강조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수년 간 환자들이 사용하는 혈액순환이라는 말이 어떤 상황을 말하는지 관찰해 본 바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이 손끝, 발끝이 저리고 시리고 찰 때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이게 나를 만나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고 우리나라의 일반대중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과연 이 표현과 인식은 맞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을 해 보자. 먼저 어릴 적 고무밴드라고 부르고 물건 포장이나 머리 묶는데 에도 썼던  노란색 원형 고무줄을 준비한다. 이것을 자신의 어느 한쪽 집게 손가락에 요령껏 감고 또 수차례 감아 손가락을 조이게 하여 보자. 고무줄이 클수록 여러 번 꼬아 조여야 할 것이다. 손톱 밑의 분홍빛이 창백해 질 때 까지 감는다. 서서히 고무줄의 압박에 의해 손가락에는 고통이 찾아 올 것이다. 서서히 손가락 끝은 하얗게 변해 가거나 푸르다 못해 검보라색이 되기도 하고 이내 아파올 것이다. 이게 우리 몸에 혈액순환이 안 될 때, 그 부위가 보이는 반응과 증상이다.

혈액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이 녹아 있는 체액이다. 혈액은 심장을 엔진으로 삼아 말단까지 도달하여 이것들은 전달하고 이산화탄소와 기타 노폐물을 받아서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해서 한다는 의미에서 순환(Circulation)이라는 말을 쓰는데, 흔히들 말단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장애가 있어서 산소와 영양분을 세포의 입장에서 볼 때 부족함을 느낄 정도로 피가 불충분하게 오는 현상을 허혈(虛血, ischemia)이라고 부른다.

결국 일반 대중이 염려하고 의학이 규정한 혈액순환장애는 이 허혈을 의미하는데 허혈의 증상은 다름 아니라 위에서 함께 해 본 실험에서 느끼는 그런 성질의 고통이다. 사람의 몸은 혈액순환에 장애가 발생하면 통증을 느낀다. 뇌는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특수 장기이기는 하지만 그 외 모든 장기는 통증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심장에 피가 안 통하여 발생하는 협심증이라는 병이 있는데, 이는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져 심장에 혈액순환이 안 되어 일을 하거나 뛰거나 흥분하는 등 심장이 더 힘차게 뛰고 피를 더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에 혈액순환장애 정도가 증폭되어 심장허혈이 가슴이 조이고 터지는 듯하고 뻐근한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다.

소장, 대장으로 가는 혈관도 좁아지는 병이 있는데, 소장, 대장이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할 상황, 즉,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키면서 항문 쪽으로 열심히 꿈틀거려 음식찌꺼기를 밀어 내어야 할 때 혈액에 실려 오는 영양분과 산소가 부족하다 보니 허혈상황에 빠진 소장, 대장에서 시작된 배가 맞은 듯이, 터질 것 같이, 먹먹한 통증을 느낀다.
위에서 실험한 손가락 혈액순환장애와 같은 현상이 다리로 가는 혈관에도 나타날 수 있다. 이 현상도 다리의 근육이 많은 산소와 영양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를 공급하기 위한 혈관이 좁아져 원활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언덕을 오르거나 바삐 걸어야 할 때, 혈액순환이 감소된 부위-대개는 종아리이다-에 뻐근하고 터질 것 같고 조이는 듯한 통증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드물기는 하지만, 폐, 콩팥, 비장, 간 등의 장기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증상의 공통점은 ‘아프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 혈액순환장애라고 알려져 있는 증상이 무엇인지 돌이켜 생각해 보자. 저리고 시리고 찌릿찌릿한 감각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픈 통증이 아니다. 또 하나의 오류는 진정한 허혈의 증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말하는 증상은 오래 지속되는 감각들이다. 어떤 사람은 항상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허혈이 수 시간 지속되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중증의 허혈이 계속되면 세포는 그만 죽어 버리며 이를 괴사, 혹은 경색이라고 표현한다. 뇌혈관이나 심장혈관, 다리로 가는 혈관이 아예 막히면, 허혈이다 못해 세포가 죽어 버리며, 이게 바로 뇌경색증, 심근경색증, 하지괴사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손과 발의 저리고 시리고 찌릿찌릿한 감각은 혈액순환장애가 아니다. 이 증상은 그 부위의 ‘신경‘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다. 신경은 우리 몸에 분포해 있는 전기줄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 때 팔꿈치 뒤쪽 뼈 옆을 누르거나 손을 있는 힘을 다해 압박하였다가 펴면서 전기가 오르게 하는 놀이를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그 느낌, 절절거리고 얼얼하고 남의 살 같았던 그 느낌은 신경이 압박되거나 건드려지거나 신경의 감각전달에 잠시 이상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피가 안 통하도록 꽉 눌렀다가 펼 때, 즉 혈액순환이 안 되도록 압박이 되었다가 비로소 혈액순환이 잘 될 때 느껴졌던 감각이었음을 깨닫는다면 그 감각은 혈액순환과 앞뒤가 안 맞는 무관한 감각임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상다리로 오래 앉아 회식을 하고 일어설 때의 다리저림, 눌렸던 다리가 풀려 혈액순환이 잘 되기 시작하는데 왜 그 저린 감각을 혈액순환 장애라고 생각해 왔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도 혈액순환과 저린 감각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팔, 다리의 저린 느낌을 혈액순환장애라고 알고 있다 보니, 이제는 의사들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아마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증상이라 잘 모르고 있는데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근거가 있고 전문가들로부터 그들이 듣고 하는 얘기라고 쉽게 믿고 판단하여 그럴 것이다.
혈액순환장애는 해당부위의 통증으로 나타나며, 더구나 그 부위가 혈액을 많이 요구하는 상황, 그 부위가 일을 많이 해야 할 때에 나타난다. 저리고 시큰거리고 수시간 째 아픈 것은 혈액순환장애의 증상이 아니다. 다리가 그럴 경우라면 다리로 가는 신경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니까 척추관협착증, 추간판탈출증(흔히 디스크라고 하는 병), 좌골신경통, 당뇨병 환자의 말초신경병증이 주된 원인이 된다.

실제보다 너무나 염려하고 오해하여 스스로 잘못진단하고 약도 먹고 있는 혈액순환장애, 내 증상이 혈액순환장애일지 말초신경증상일지 이제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기고자 : 보라매병원 정우영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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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와 입원 진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생각하고 느껴보아야 하는 일상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환자들이 모르는 질병의 숨은 면, 그래서 벌어지는 오해, 의사들의 말 못할 고충, 내가 모르는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훈훈한 병원문화를 소망합니다.

보라매병원 내과
서울의대 내과 부교수
미국 미네소타 로체스터시 메이오클리닉 연구원 (2011~2012)
미국 뉴욕시 코넬 콜럼비아 병원 단기연수 (2002)
일본 기타큐슈시 고쿠라기념병원 단기연수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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