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슴확대 수술을 받았던 A씨. 경과를 살펴보기 위해 잠시 내원했던 그녀는 며칠 전 직장에서 정기적 신체검사를 받던 중 겪었던 난처한 경험을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가슴을 검진하던 의사가 마치 ‘나는 네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수술 후 뭐가 좋습디까?”라고 대뜸 물어 봤더란 것이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은 그녀는 그 자리에서 뭐라 말을 못했지만 후에 생각하니 매우 불쾌했다며 몸을 떨었다.
아마도 그 의사는 가슴 성형 수술을 성적 잣대로만 바라보고 그녀에게 질문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성의 가슴은 섹슈얼리티와 함께 새 생명을 모성과 연결시켜 주는 여성성의 숭고한 상징이다. 이 때문에 가슴이 빈약한 여성은 심한 콤플렉스를 느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들에게는 가슴 확대 수술이 일종의 신체적, 심리적 복합 치유 과정인 것이다.
물론 그 의사는 순수한 진리탐구의 정신을 바탕으로 수술 후 환자의 느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발휘해 물어본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질문 받는 당사자가 맘 속으로 “제발 모른 척 해주었으면……” 하고 수백 번도 더 되뇌고 진료실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 질문을 그렇게 가볍게 던지진 못했을 게다.
각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일상화된 서구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콤플렉스에 대해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화제를 돌리고 ‘배려’하는 것이 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다. 심리적 사회적으로 미성숙하고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배려’의 경험이 적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콤플렉스를 들춰내고 심리적인 상처를 입히기 쉽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맞는 의사들은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소양을 다 갖추었을 때에야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듣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내년이면 인구 10만 명당 의사 200명의 시대가 온다. 그리고 전국의과대학 정원이 삼, 사천 명에 육박하고, 대부분의 졸업생이 의사 면허를 따는 시기가 왔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들 모두가 건전한 사고방식과 투철한 봉사정신, 그리고 예절 바르며 정의로운 히포크라테스 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콤플렉스를 이해해주고 배려하는 자세는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 소양으로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겠다. 더욱이 사람의 아픈 부위를 보는 의사라면 이런 자세가 몸에 배어야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감싸 안아주고, 진정으로 아픈 곳을 치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A씨가 떠난 후, 과연 나 자신으로 인해 환자를 슬프게 만들거나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가? 선한 치료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히포크라스테스 선서를 찾아 읽어 보았다.
“나의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바람성형외과 심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