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여성인 A씨는 4년 전에 우리 병원에서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진단 받고 대학병원에서 관상동맥 치환술을 받은 경력이 있었다. 또 혈소판 증가증이 발견되어 치료 받고 있었다. 최근 외래를 다시 방문한 A씨는 행동과 말씨가 어눌하고 질문에 대한 반응이 느려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니 최근에 파킨슨병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병원의 여러 과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대학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확인해 보았더니, 심장내과 처방약 6가지, 정형외과 처방약 6가지, 신경과 처방약 4가지 그리고 혈액종양내과 처방약 1가지 모두 17가지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었다.
파킨슨병은 중뇌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세포가 손상되고, 이상 단백질이 축적되는 질병이다.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세포가 손상되는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도파민에 의해서 분해되어야 하는 이상 단백질의 축적이 많아질수록 증상이 심하게 된다. 파킨슨병은 행동이 어눌해지고 걸음이 느려지고, 반응이 느려지는 증상으로 시작되어 지각능력에 손상이 오고 마침내는 치매와 같은 증상으로 발전한다.
파킨슨병은 증상을 기준으로 진단하게 된다. 질병이 어느 정도 진행하면 뇌 MRI 검사 등으로 중뇌의 손상을 확인할 수 있다. 걸음걸이 이상이나 손떨림 등의 초기 증상은 도파민을 보충해주는 치료만으로 조절이 되지만, 질병이 진행해서 뇌세포의 손상이 심해지면, 도파민의 보충효과가 미미해진다. 파킨슨병이 진행하면 전신의 근육에도 영향을 미쳐서 소화장애와 변비 등 소화기계 증상과 식이 장애, 이에 따른 영양실조도 자주 발생한다. 영양실조는 신체 모든 기능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적절한 식이요법으로 영양실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A씨는 키가 146 cm이고 체중이 45 킬로그램으로 최근에 체중이 줄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식사량이 많이 줄었으며, 심장병 때문에 육류는 거의 섭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혈액 검사에서 콜레스테롤 값이 매우 낮고 영양 부족상태가 확인되었다. 또 혈소판 수가 정상보다 증가한 상태이고, 혈액의 점성이 매우 높았다.
A씨가 처방 받은 약 중에서 관상동맥질환 치료제를 4 가지로 줄이고 혈소판 증가증 치료제 한가지와 파킨슨병 치료제 2 가지만을 복용하도록 권유하고, 혈액의 점성을 감소시키고 뇌혈류를 개선하기 위하여 혈액정화 치료를 하였다. 혈액정화 치료는 혈액 내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이상 단백질 등을 제거해서 말초혈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A씨는 혈액정화를 한 후 걸음걸이와 말씨가 빨라지고, 시야가 밝아졌으며, 정신이 맑아졌다.
A씨의 건강 상의 문제는 관상동맥질환과 혈소판 증가증이었다. 관상동맥질환은 심장을 먹여 살리는 동맥이 막혔다는 뜻이다. 관상동맥이 막혔다면, 온 몸의 다른 혈관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 혈액의 점성을 높이는 혈소판 증가까지 있었으니, 말초혈류 장애가 더 심했을 것이다. 어떤 연유로 파킨슨병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혈액의 점성을 낮추고 말초혈류를 개선해서 혈류 장애에 의한 뇌세포 손상을 방지하면 파킨슨병의 진행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영양실조를 막을 수 있도록 고기를 포함한 균형있는 식사를 하도록 권유하였다.
대학병원의 전문과들이 각각 적절한 처방을 하는 것은 좋으나, 환자의 전체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가지 약을 1달 이상씩 장기간 처방을 하면, 여러 과의 진료를 동시에 받는 환자가 20개 가까운 약을 복용하게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특히 여러 가지 문제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령의 환자들에서 이런 경우는 더욱 흔하다. 한가지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훌륭한 약이지만 많은 종류의 약들이 섞여서 몸 안에 들어가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질병마다 다른 약 처방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문제를 먼저 생각하고, 약은 최소한으로 쓰고도 치료할 수 있는 지혜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