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의학대학에 입학을 하면 ‘의사학’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rapport(라포)’라는 단어를 배우게 된다. ‘라포’는 사람과 사람 사이 생기는 상호 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 용어로 서로 마음이 통한 사람들끼리 어떤 일이라도 맘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단어일 수 있으나 환자를 마주하는 의료인들은 항상 생각해야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문분야에 대한 의료지식이나 숙달된 술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환자와 의사 간의 라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술을 완벽하게 해놓은 상태라도 환자와의 신뢰가 깨지면 치료가 잘 안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나 내가 집도하는 수술인 사지연장술과 휜다리수술의 경우는 더 그렇다. 수술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수술 후 재활이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의 재활 노하우를 설명을 해도 이상하리만치 다른 의사들의 말을 믿는 환자가 간혹 있다. 한 번은 우리 환자가 재활 중 무릎뼈가 부서져서 찾아온 경우도 있다. 타 병원의 재활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환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하는 날이었다. 

환자와의 신뢰 형성을 위한 태도는 글로 배워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동안 제자들을 가르쳐보기도 했었는데, 그들 중에는 원래 가지고 있는 성품이 환자와 잘 융화되고 라포 형성이 가능한 친구들도 있지만, 전혀 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대개는 스승과 제자가 도제교육을 통해 스승의 행동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환자와의 관계다. 내 스승이 환자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조치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회진 돌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들이 제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운이 좋게도 나의 스승님들은 환자를 끔찍이 아끼셨고, 대한민국 의료계에 한 획을 그었던 분들이다. 나의 지금의 모습은 스승님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좌우명은 ‘초심’이다. 전에는 ‘항상 초심으로’라고 했다가 너무 긴 것 같아서 줄였다. 누구나 처음엔 원대한 계획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상황에 부딪혀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좌우명으로 삼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초심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도록 모니터 앞에 붙여두고 매일 되뇌이고 있다. 

수술을 하다 보면 완벽히 치료가 안되는 경우가 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경과가 좋지 않은 경우 환자들이 치료 계획을 따라와 줄 때 감사하고 정상화시키려고 끝까지 노력한다. 나는 참된 의사의 모습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초심’을 생각하고 환자의 편에 서서 ‘이 환자의 상태를 어떻게 좋게 만들까?’ 고민을 한다. 이 부분은 의사가 환자에게 향하는 라포 형성이다. 

환자들은 의사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신뢰를 가진다. 어찌됐든 병원은 공급자고 환자는 소비자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요구할 수 없다. 환자들이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다. 타 병원에서 오는 환자들의 경우 기존 병원과의 신뢰가 깨진 상태이다 보니 더욱더 신경 써야 한다. 치료는 당연히 잘해야 할 일이고, 그 환자의 마음까지 어우를 수 있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환자와의 라포 형성을 위해 내가 쓰는 방법은 휴대폰 번호를 공유하고, 언제든 재활 중 문제가 있을 때 전화를 받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그저 일상이다. 가끔은 새벽시간에 핀이 부러져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20년이 넘도록 개인 휴대폰 번호 이외의 전화를 쓴 적은 없다. 어림잡아 내 환자들인 카톡 친구가 1000명은 넘을 것 같다. 환자와의 직접 통화는 환자의 상태를 가장 빠르게 전달받고 가장 빠르게 조치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데 한치의 의심이 없다. 

또 다른 방법은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커뮤니티 세 곳(사지연장커뮤니티, 휜다리커뮤니티, 단지증커뮤니티)의 1대1 의학상담소에 답변하는 방법이다. 시간날 때마다 틈날 때마다 그곳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직접 해준다. 다른 카테고리는 해당 부서 직원이 하고 있지만, 1대1 의학상담소 답변만큼은 나 혼자서 처리한다. 많은 분들이 이것에 고마워하고, 나의 진심을 알아준다.

나의 입장보다 나를 믿고 찾아와주는 환자의 입장을 중요시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며 처음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던 그날의 마음가짐으로 환자들의 새로운 삶을 찾아주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요즘처럼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시기에 많은 의료진들이 이 글로 마음을 다잡고 환자를 위한 의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