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에는 예전부터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는 혈압이 오래도록 조절 되지 않는데도 증상이 없기 때문에 투약이나 적극적인 생활습관 개선을 하지 않는 고혈압 환자들에게 고혈압의 합병증을 설명할 때에 특히나 유용한 별명이다. 여러 종류의 다양한 고혈압 합병증 중에서 좌심실 비대와 심부전은 앞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심장병이 될 것이다. 심장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침묵의 살인자가 내 몸 속에 있다면 그대로 방치해 둘 수 는 없지 않겠는가?

수년 전부터 고혈압이 있다고 이야기 들었지만, 증상이 없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던 50세 A씨. 오랜 만에 나간 동창회 모임에서 등산을 갔다가 심상치 않은 증상을 느껴 병원에 내원하였다. 다른 동창들은 거뜬히 올라가는 정도의 낮은 경사에도 숨이 찼던 것이다. 그래도 뒤떨어지기 싫어서 하루 종일 애를 쓰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까지도 답답함과 두근거림이 지속되었다. 고혈압 합병증으로 좌심실비대 및 좌심방 확장이 방치되어 있다가 운동 부하가 되면서 심부전 증상과 부정맥이 발현된 경우였다.

1. 고혈압 환자에서 왜 심부전이 잘 발생할까?
혈압이 높은 채로 오래도록 유지되면 심장이 전신에 혈액을 펌프질을 하는데 힘이 더 들게 된다. 이를 압력 과부하라고 의학용어로는 일컫는다. 무거운 아령을 들어올리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하면 팔 근육이 두꺼워 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높은 혈압을 이겨내면서 좌심실이 수축을 하게 되면 좌심실의 근육이 두꺼워 지는 좌심실 비대가 일어나게 되는데, 초기 단계에는 전신 혈액 공급을 위한 적응기전으로 발생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면 결국 두꺼워진 심장근육은 섬유화가 되어 뻣뻣하고 유연성이 떨어진 상태가 된다. 좌심실 비대는 결국 심장의 이완기능 (확장기능) 장애를 유발하고 심한 경우 심장의 수축기능 장애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산소 공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심부전이 심해지면 운동 능력이 떨어지며 호흡곤란이나 전신 부종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심부전은 고혈압이 없는 사람에 비하여 고혈압 환자에서 4배 더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부전이라 하면 숨이 차서 심장병원에 입원하거나 특수 약물 치료를 받는 경우를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벌써 수년 전부터 미국과 유럽의 심부전 치료 가이드라인에는 고혈압을 진단 받은 것 만으로도 심부전 환자 (Stage A)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심장의 펌프기능 (수축기능)은 정상이더라도 이완기능 장애로 인해 주로 나타나는 심부전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나이, 여성, 고혈압, 비만 등을 꼽고 있다. 나이와 성별은 개개인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므로 향후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정상 혈압과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2. 어떤 경우 심부전을 의심해야 할까?
정상적으로 심장은 전신 조직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심부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겠다.

운동시 호흡곤란: 평지를 걸을 때 또는 계단을 오를 때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의 호흡곤란: 베개를 2개 이상 베어야 잠을 이룰 수 있음.
기침: 잦은 마른 기침, 흰색 가래를 동반한 기침
갑작스러운 몸무게 증가
부종: 다리, 발목의 부종, 가끔은 복부에 발생
전신 피로: 약간의 움직임에도 극도로 근육이 피로함을 느낌.

3. 심부전이 의심된다면 어떠한 검사를 받아보게 될까?
가장 간단하면서 중요한 검사는 전문의의 진찰과 흉부 X선 촬영과 심전도검사이다. 혈압상태와 병력, 증상을 살펴보면 고혈압 환자에서 심부전 가능성을 알 수 있고 흉부 X선 촬영을 통하여 나타나는 간접적인 심장의 그림자 (실루엣)을 통하여 심장비대를 가늠할 수 있다. 심전도 검사를 시행해 보면 좌심실 비대가 있을 때 나타나는 심장 전파의 크기의 증가를 확인 할 수도 있고 좌심방 확장 시 잘 동반되는 심방 세동과 같은 부정맥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심장초음파검사를 시행해 보면 심장의 전반적인 구조와 기능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 때 좌심실 두께를 통하여 좌심실 질량, 좌심실 수축기능 및 이완기능을 복합적으로 평가하게 되며 여러 가지의 도플러 계측 수치를 이용하여 심부전을 진단하고 또한 예후를 평가할 수 있다.

/기고자 : 연세대 정남식 의료원장

[저자 소개]
정남식 의료원장은 현재 세브란스병원 병원장과 심장내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국민고혈압사업단 전(前)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대국민 고혈압 예방 캠페인 활동에 앞장서 왔다.

[사업단 소개]
국민고혈압사업단(www.hypertension.or.kr)은 고혈압 조기발견과 국민 계몽을 위해 2001년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기관이다. 설립 이래 자기혈압알기 운동, 소금 섭취감량 운동 등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양한 홍보 및 관리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